엔화 약세로 큰 이익을 본 일본 대기업이 25년 만에 최대 폭으로 임금을 인상하고 있다. 다수 기업이 인상 폭이 가장 컸던 지난해를 웃도는 임금 인상률을 약속했다. 이제 시선은 중소기업으로 향하게 됐다.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도 임금을 크게 올릴 수 있도록 정책 수단을 총동원할 방침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NHK방송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춘투 집중 회신일'을 맞은 13일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한 유명 대기업 다수가 노조가 제시한 임금 인상 요구액을 전액 수용했다. 일본은 매년 봄 노사 간 임금 협상인 '춘투'가 진행되는데, 집중 회신일에는 대기업 사측이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한 답변을 보낸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 도요타는 노조 요구를 수용해 월급을 최대 2만8,440엔(약 25만 원) 인상하고 역대 최고 수준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 도요타는 4년 연속 노조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본제철은 노조 요구보다 많은 14.2% 인상을 결정했다. 노조 측은 월 3만 엔(약 27만 원) 인상을 제시했지만, 일본제철은 이보다 많은 3만5,000엔(약 3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답했다. 닛산자동차와 미쓰비시중공업, 파나소닉 등 '엔저' 혜택을 본 수출 기업 다수가 노조가 제시한 인상 폭을 수용하기로 했다. 닛케이는 "기업들이 물가 상승으로 가계 부담이 커지자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큰 폭의 임금 인상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노사 단체는 환영 의사를 밝혔다. 가네코 아키히로 일본금속노조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승률을 뛰어넘는 수준의 임금 인상으로 경제 선순환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재계단체 '경제동우회' 대표 간사인 니나미 다케시 산토리 사장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 사회를 구축하는 열쇠는 임금 인상의 실현"이라며 "2025년 이후에도 계속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대기업의 결단에 올해 임금 인상률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 결과 지난해 직원 1,000명 이상 규모 기업의 평균 임금 인상률은 3.6%였다. 1989년 조사 이래 가장 큰 폭이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았던 탓에 실질 임금은 전년 대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정부가 나서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압박한 이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1일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임금 인상과 성장의 선순환을 만들어 가려면 춘투가 매우 중요하다. 민관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중소기업으로 옮겨갔다. 일본 고용의 70%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률이 낮으면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임금 인상 움직임이 중소기업까지 확산하는 게 중요하다. 정책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