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 조선·해운 산업에서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업 시장에서 중국에 한참 뒤처진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대대적 조사를 예고하면서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중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미중 간 해빙 기류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전미철강노조(USW) 등 5개 노동조합이 중국의 조선·해운 물류 산업 내 불공정 관행에 대해 조사에 착수할 것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타이 대표는 "우리는 철강·태양광· 배터리· 광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이 우리의 공급망을 위태롭게 해온 것을 목격해 왔다"며 "따라서 노조의 이번 청원 내용도 자세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5개 노조는 청원서에서 "중국은 선박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조선 업체에 제공할 것을 자국 철강 업체에 강요해 왔다"며 "중국의 이 같은 차별적이고 잘못된 관행을 철폐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 항구에 입항하는 중국 선박에 대한 수수료 부과 △미국 조선업 지원 기금 조성 △미 상선 수요 창출을 위한 대책 등을 요구했다. USTR은 미국 무역법 301조에 따라 청원 접수 뒤 45일 안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중국 선박 생산 능력은 현재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 미국은 1975년까지만 해도 연간 70척의 상선을 만드는 등 생산량 1위를 차지했지만, 50년 가까이 흐른 현재는 전 세계 상선 생산량의 1%도 차지하지 못한다. 반면 중국은 한국과 선박 생산량 1, 2위를 다투는 조선 강국으로 거듭났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전 세계 선박 건조량의 50.2%, 신규 수주량의 66.6%를 차지했다.
미국은 이번 청원을 받아들여 실제 조사에 나설 전망이다. 에반 메데이로스 조지타운대 교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으로선 11월 대선이 예정된 시점에 제기된 이번 청원의 수용 여부는 고민할 여지가 없는 문제"라고 짚었다. 노동자 표심을 얻기 위해 중국 조선업에 대한 조사는 물론 제재 조치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는 얘기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지난달 '항만 시설 사이버 보안 강화' 차원에서 향후 5년간 200억 달러를 투입, 중국산 크레인의 미국산으로의 교체 계획을 발표했다. 노조의 이번 청원 접수 이전부터 중국 조선업에 대한 압박 정책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FT는 "조사가 시작되면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이후 나타난 미중 간 긴장 안정화 기류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향후 조선 시장이 미중 간 무역 전쟁의 새로운 전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적지 않은 반발도 예상된다. 중국은 미중 정상이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중 간 긴장 이완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미국이 이를 실천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내왔다. 중국으로선 자국 조선업에 대한 조사를 정상 간 약속을 깬 것으로 간주할 공산이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최근 보도에서 "미국이 중국의 조선업을 새로운 타깃으로 삼으려 한다"며 "중국이 조선업계에서 최강자로 부상하자 미국은 중국 위협론을 더욱 병적으로 과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