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 10곳 가운데 9곳은 사외이사가 이사회 안건에 100%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 사외이사 대부분이 주주를 대신해 독립적으로 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지표로 풀이된다.
기업 데이터 연구소인 CEO스코어는 13일 국내 500대 기업(매출 기준) 중 8일까지 주주총회소집공고 보고서를 제출한 181곳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100%인 기업은 163곳(90.1%)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1년 전인 2022년(159곳·87.8%)보다 2.3%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총수가 있는 기업일수록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총수가 있는 기업 164곳 가운데 150곳(91.5%)에서 사외이사가 이사회 안건에 100% 찬성했고, 총수가 없는 기업 17곳 중에서는 13곳(76.5%)에서 100% 찬성률을 보였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LG전자, LG화학, 포스코인터내셔널, 한화생명, 이마트, 에쓰오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CEO스코어는 밝혔다.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금융지주사 세 곳의 사외이사 이사회 안건 찬성률도 100%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는 '억대 연봉자'가 상당수였다. 삼성전자 사외이사는 1인당 평균 2억32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현대차(1억1,830만 원), LG전자(1억430만 원), 현대모비스(1억280만 원), 삼성물산(1억4,620만 원) 등도 사외이사 평균 연봉이 1억 원을 넘었다.
지난해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가장 낮은 기업은 90%를 기록한 유한양행이었다. 유한양행 사외이사들은 지난해 이사회에서 전체 140표 중 찬성 126표, 보류 13표, 기권 1표를 던졌다. 찬성률 90.7%를 기록한 SK와 91.4%인 SK하이닉스가 뒤를 이었다.
김성춘 CEO스코어 책임연구원은 "선진국에서는 자산가인 전·현직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다른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아 독립적으로 경영을 감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전·현직 관료나 교수가 사외이사를 맡는 경우가 많아 급여는 높은 수준이지만 독립성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