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장신(長身)’을 향한 욕망의 역사는 유구하다. 큰 키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원시적 남성성 이론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않는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니콜라 에르팽은 저서 ‘키는 권력이다’에서 남성의 키는 연애, 결혼뿐 아니라 취직, 승진, 임금 등 사회적인 성공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흔히 ‘키 높이 수술’로 알려진 사지 연장술이 치료가 아닌 미용 목적으로 성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술이라는 최후의 수단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약, 영양제, 성장 호르몬, 스트레칭 등 온갖 키 크는 방법이 넘쳐난다. 이런 세상에서 키 작은 남자로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키뿐만이 아니다. 사회가 견고하게 세운 ‘남성성’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계간 문예지 자음과모음(2024 봄호)에 실린 서장원 작가의 단편소설 ‘리틀 프라이드’는 키 크는 수술을 받은 ‘오스틴’으로부터 시작된다. 제법 잘나가는 “무신사와 당근마켓 사이의 IT 스타트업”의 소셜마케팅팀 본부장인 오스틴은 성수나 홍대 등에서 빈티지 의류를 입은 젊은이들과 만나 패션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상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키가 164㎝인 소설 속 화자 '나'보다 키가 작은 극소수의 남자 중 하나다.
“외모가 멋지지 못한 남자가 여러 사람에게 호감을 사고 주목받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캐릭터”를 오스틴이 제대로 연기해 내고 있다고 ‘나’가 느끼는 건 '나'가 트랜스 남성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남들의 눈에 괜찮은 남자로 보일지를 고민하는 '나'는 “내가 절대로 될 수 없는 남자처럼” 느껴지는 오스틴에게 동료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여자친구 ‘혜령’은 그런 '나'를 “퀴어로서 프라이드가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은 '나'를 끊임없이 위축시킨다.
모종의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오스틴은 회사를 그만둔 후 사지 연장술을 감행하고, 병문안을 온 '나'에게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린 그러니까, 전우 같은 거잖아요.” '나'는 대답한다. “아니요···. 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전혀 달라요.”
결코 ‘다정한’ 소설은 아니다. 수술로 키가 커진다면 “페미(니스트)가 아닌 좋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오스틴이나,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고독을 감내해야만 하는 피폐한 '나'까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서사를 이끈다. 첫 소설집(‘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에서 “소설 속에서 누구도 미워하고 정죄하지 말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밝힌 서 작가답게 완전한 악인도, 또 선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은 현실도 그렇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누군가라도 그를 완벽히 이해하고 또 판단하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의 영역에 있다. 결국 '우리'는 불완전한 채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소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