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세계 경제 불평등 더 키울까 완화할까

입력
2024.03.12 04:30
25면
<9>개도국 발전에 도움 될 AI
교육 격차 줄이고, 보건·위생 개선
출산율 하락→아동 교육비 확대
야간불빛 분석해 소외지역 파악
국제원조도 보다 효율적으로

편집자주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3주에 1회 연재합니다.



인공지능(AI)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최근 전 세계 주식시장은 AI 열풍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있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AI 관련 기업의 주가는 급등한 반면, 이 흐름에 소외된 기업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AI 역량에 따라 국가 간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거란 우려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AI가 세계 경제, 특히 개발도상국 경제 성장에 아주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낙관론을 펼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교육 격차‘의 축소 가능성에 있다. <그림>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일본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 비해 인도와 아프리카의 니제르, 케냐 등 저소득 국가의 학교 교육 기간은 매우 짧다. 교육 기간뿐 아니라, 교사 수준도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란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학생들은 평균 6년 안팎으로 학교에 다니지만, 선진국 기준에서 보면 단 3년 정도 학업을 마친 수준의 지식을 얻는 데 그친다고 한다.

짧은 교육 기간은 연쇄적인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저렴한 인건비와 풍부한 노동력에 매력을 느껴 외국인 직접투자가 유입되더라도, 아주 낮은 단계의 기술 수준을 필요로 하는 부문만 남게 될 수밖에 없다. 공해 물질을 덜 배출하면서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첨단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외국어 능력은 물론, 어느 정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근로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 기간이 짧고 절대적인 교사 부족에 직면한 저개발 국가에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교육정책 당국자에게 챗봇이 답이 될 수 있다. 어린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프로그램에 AI를 탑재해 놓으면, 분수 계산과 같은 산수부터 시작해 영어 등 다양한 교육을 보다 손쉽게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이 문제가 되지만, 과밀 학급으로 고통받는 저소득 국가 학생들에게 챗봇은 가정교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챗봇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인터넷 연결이 필요하며, 대부분의 저소득 국가는 인터넷망을 설치할 여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실제 20여 년 전 핸드폰이 처음 보급되기 시작할 때, 저소득 국가의 국민들은 아무런 혜택을 입지 못했다. 일단 단말기값이 너무나 비싼 데다, 일부 도시 지역을 제외하고는 기지국이 깔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가 적었기에, 전국을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형성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출현은 수많은 저개발 국가의 삶을 바꿔 놓았다. 치열한 경쟁 속에 단말기 가격이 100달러 밑으로 내려오며 구입 여력이 생긴 데다, 초고속통신망을 전국에 도입하는 것에 비해 이동통신 중계기 설치비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삼성전자가 통신 연결이 어려운 지역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내놓음으로써,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과 남아시아 사람들의 삶에 큰 변화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질병 증상이 나타났더라도 이를 제때 파악하지 못하고, 또 어떻게 피임을 해야 하는지 주변에 조언을 받기 어려운 이들에게 인공지능 스마트폰은 '보건 전문가'의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로 인한 여성 및 아동의 건강 개선은 사회 전체의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이가 성인으로 잘 자랄 거란 생각이 들 때 부모들은 적극적으로 가족계획에 나서고, 노령 출산의 위험도 피하려 든다. 잦은 출산 과정에서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진다면 젖먹이 아이도 살아남긴 쉽지 않다. 따라서 여성과 아이의 건강 상태 개선은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아동 1인당 교육비가 확대될 가능성도 커진다.

물론 교육과 달리 의료 부문에서 AI가 잘못된 조언을 했을 때 발생할 위험은 크다. 그러나 적어도 나라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지, 현재 경제정책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가 될 경제 분석은 정책전문가들에게 대단히 귀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소득 국가들이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는 또 다른 이유는 제대로 된 통계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991년 나이지리아 정부는 전국 규모의 인구조사를 시행했는데, 가구당 최대 인원을 9명으로 기재한 항목이 문제가 됐다. 당시 나이지리아의 일부 주는 인구 비례에 따라 중앙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구조였기에 가구 구성원을 9명이라고 쓴 가구가 속출했다. 직전 인구조사에 비해 인구가 2배 넘게 늘어난 통계를 본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일체의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아무리 통계처리 기법이 발전하더라도, 기초 통계가 조작에 근거한 것이라면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인공위성에 찍힌 야간 사진이다. 한반도에 대한 인공위성 사진이 북한의 궁핍함을 극적으로 보여주듯, 인공위성이 촬영한 야간 사진의 조명 변화를 AI를 활용해 측정하면 실제 경제 상황을 훨씬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도시의 불빛은 밝아지며, 사람들의 활동량이 늘어나는 데 착안한 것이다. 예컨대 중국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연 10% 이상의 1인당 소득 증가를 기록한 것으로 발표했지만 야간 조명의 밝기 변화로 측정된 숫자는 그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야간 인공위성 사진의 활용은 체감 성장률 측정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각 지역별로 얼마나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하는지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아프리카 빈민가의 낮과 밤 이미지를 활용해 밤에 얼마나 많은 빛이 있을지 예측한 후, 실제 데이터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불평등을 측정했다. 저소득 국가 정부가 아무리 자신의 경제성장을 포장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지원이 어떤 식으로 배분되는지, 또 어떤 지역이 소외되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소득 국가를 향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집중적으로 배분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을 보면, 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들이 AI시대를 훨씬 앞서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앞서 지난해 영국 데이터 분석업체 토터스인텔리전스가 발표한 ‘제4차 글로벌 AI 지수’를 보면, 전 세계 주요 62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AI 경쟁력은 6위였다. 한국보다 앞선 국가는 1위 미국, 2위 중국에 이어 싱가포르, 영국, 캐나다 순이었다. 우리나라의 종합순위는 2020년 8위에서 2021~2022년 7위에 이어 지난해 6위까지 올랐다. 부디 우리나라도 국민을 통제하는 데 AI를 사용하기보다, 새로운 산업과 상품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활용돼 혁신국가로서의 지위를 이어가기 바라는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