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11일로 꼭 30일 남았다. 저출생, 저성장에 더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대전환의 문턱에서 치르는 선거다. 여야가 미래 청사진을 제시해 우리 삶을 바꿔가야 할 때다.
하지만 자극적인 표현으로 상대를 공격하며 표를 얻는 반사이익만 노리고 있다. 정당의 지역구 대표를 내세우는 공천에서도 참신한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제3지대는 맥을 못 추고 있다. 이대로 '비전·감동·바람이 없는 3무(無) 선거'로 치러질 경우 정쟁에 치중했던 21대 국회가 4년 더 연장되는 것과 다름없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10일 "선거에서 미래 어젠다(의제)가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저출생, 기후 파국, 복합 불평등의 심화, 미중 간 신냉전 등으로 한국 사회가 대전환기를 맞고 있음에도 이를 다루는 미래 가치 논쟁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비전과 철학은 고사하고 여야 모두 서로 말꼬투리나 잡으려는 네거티브 선거 전략만 횡행해 이미 저질인 정치 수준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적인 예로 양당은 아직 10대 공약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쟁적으로 '민생 행보'를 외치지만 철도 지하화, 도로 신설, 부동산 규제 완화 등 지역 주민을 겨냥한 선심성 공약이 대부분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은 정권 심판론에, 여당은 이를 희석하기 위한 야당 심판론에 집중하는 구도 싸움에만 올인하다 보니 비전과 디테일한 정책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당면한 현안에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여야 지도부 모두 선거를 앞두고 실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적 관심사인 의대 정원 확대 문제에서조차 입을 다물고 있다"고 꼬집었다.
비전이 미흡하다면 비전을 제시할 새 인물이라도 발굴해야 하는데 여야는 이마저도 외면하고 있다. 여당은 잡음을 줄이기 위해 현역 의원 위주의 안전한 공천, 야당은 계파 물갈이에 주력한 결과다. 최창렬 교수는 "양당 모두 친윤계와 친명계라는 주류 세력이 압도적으로 공천을 많이 받았다"면서 "역대 최악이라는 21대 국회를 이끌었던 주류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22대 국회를 다시 차지하겠다는 것에서 어떠한 감동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양당 중심 체제는 네거티브 경쟁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기득권 정치의 폐해를 줄이고자 선거제 개편을 추진했지만 빈손으로 끝났다. 도리어 거대 양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더 차지하기 위해 앞다퉈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조진만 교수는 "비례 의석수는 늘리지 못하고 그마저도 위성정당으로 대응을 하다 보니 거대 양당 구조가 더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제3지대 정당인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섣부른 통합과 결렬로 혁신 동력을 걷어찼다. 2016년 총선에서 대항마로 나선 국민의당 돌풍과 같은 구조적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조국혁신당의 초반 기세 몰이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이 간과한 중도·무당층의 요구를 담아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대변한 열린민주당과 유사하다. 다만 "현재 조국혁신당의 두 자릿수 지지율은 '이재명의 민주당은 싫지만 정권 심판은 필요하다'고 보는 중도층이 일부 반응하는 결과”(조진만 교수)라는 해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