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성별이 뭔가요? 현재 남자 환자 입원이 가능한 병실은 2인실밖에 없어요."
10일 오전 서울 남부권의 A종합병원(2차병원)에서 원무과 직원이 응급실 환자 보호자에게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최근 상급종합병원 전공의 집단 이탈로 2차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는 현상 때문에 이 병원에서도 6인실이 이미 꽉 찼다는 설명이었다. 병원 관계자는 "대학병원들이 입원을 적게 받으면서 여기도 포화 상태"라고 토로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 3주 차를 맞이하면서 전국 2차병원들이 쏟아지는 환자들을 받아내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의료대란 장기화에 대비해 경증 환자는 1차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2차병원을 거쳐야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상급종합병원 아닌 일반 종합병원의 의료진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날 한국일보가 둘러본 서울의 2차병원에선 상급종합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까 봐 발길을 돌린 환자들로 인해 응급실 등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빚어졌다. A종합병원의 응급실의 기준병상 대비 혼잡도는 오전 11시 40분쯤 61%였다가 약 1시간 만에 95%에 도달할 정도로 환자 수가 늘었다. 이 한 시간 동안에만 소방 구급대원이 네 차례, 경찰이 한 차례 환자와 함께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 안전관리팀 황모(28)씨는 "평소엔 경찰·소방 관계자들이 하루에 한두 번 정도 병원에 환자를 데리고 왔는데 최근엔 빈도가 확 늘었다"며 "평일 주말 상관없이 응급실 찾는 환자분들이 50% 넘게 많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 동북권에 위치한 B종합병원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 일대에서 응급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상당수가 이 병원으로 몰린 듯했다. 여기로 오기 전 대학병원 응급실 등 10곳에 문의했다는 환자 보호자 C씨는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전화를 돌려봤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2시간 만에 겨우 응급 환자를 받는 곳을 찾아 서둘러 모셔왔다"고 한숨을 쉬었다.
상급종합병원이 감당하던 짐을 고스란히 져야 하는 2차병원 의료진들도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3차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2차병원을 거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며 적잖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50대 수간호사 D씨는 "환자 수가 급격히 늘면서 피로도가 쌓이고 있는 것은 맞다"며 "2차병원 중에도 24시간 응급실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아서 준비가 우선 돼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 조치가 현실화하면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자, 일부 환자들은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A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 보호자 60대 이모씨는 "응급 상황에서 2차 병원을 한 번 거치게 돼 치료 시기를 놓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다른 환자 보호자 E(40)씨 역시도 "대학병원에서 중증 우선환자를 우선적으로 받는다고 해 어쩔 수 없이 퇴원했다"며 "2차병원을 가야 하는데 요즘 환자가 몰린다고 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