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원화 거래소 '고팍스'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미국 거래소 FTX 파산 여파로 3년째 자본잠식에 빠지면서 원화 거래소 사업 지속이 어려워졌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전북은행은 고팍스에 이달 말까지 재무 건전성 개선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원화 거래소는 은행에서 실명계좌를 받아야 운영 가능하다. 고팍스는 전북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했는데, 고팍스의 자본잠식1이 계속되자 조치에 나선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말 전북은행에 고팍스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부족하다며 '경영 유의사항'을 전달한 것도 발단이 됐다.
고팍스는 2022년, 202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고팍스의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고파이' 운용을 맡았던 대부업체 '제네시스'가 FTX 사태로 도산하면서 고파이 이용자에게 원리금을 돌려주지 못한 게 원인이 됐다. 이후 글로벌 1위 거래소 바이낸스가 고팍스 지분 72%를 인수하고, 체불금 일부를 갚으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금융당국 제동으로 고팍스는 악화일로를 걷는다. 바이낸스는 최대주주 변경이 완료되는 대로 고팍스의 남은 빚도 갚을 예정이었다. 당국은 그러나 바이낸스의 해외 불건전 영업행위를 들여다보겠다며 1년이 지난 현재도 최대주주 변경 승인을 미루고 있다. 설상가상 바이낸스가 지난해 말 대북 송금 등 제재 위반 거래로 미국 금융당국에 5조5,000억 원 상당의 벌금을 내면서 한국 진출이 더 불투명해졌다. 그사이 가상자산 가격이 뛰어 고팍스 빚은 566억 원(2022년 말 기준)에서 약 1,000억 원으로 2배 불었다.
송사로도 번졌다. 고파이 이용자들은 지난해 금융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해외 법률 위반까지 검토하며 바이낸스를 막는 것은 특정금융정보법 7조 3항을 과잉 해석한 것이고, 결혼자금, 학자금이 묶여 이용자 피해만 극심하다는 주장이다. 소는 취하2했지만, 2,875명의 이용자는 시위 등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고팍스는 전북은행이 그은 1차 데드라인을 앞두고 고파이 이용자에게 채권을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고팍스 입장에서 채권은 빚이지만 주식은 자본금이라 채권이 줄고 주식이 늘어나면 재무구조가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자전환에 응한 이용자는 아직 절반에 못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고팍스 측은 "데드라인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행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야 해 고육직책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팍스와 전북은행의 실명계좌 계약은 올해 8월 종료된다. 고팍스는 올해 말 가상자산사업자 등록 갱신 신청도 앞두고 있다. 전북은행의 신뢰를 잃어 실명계좌 계약 갱신이 어그러지면, 가상자산사업자 재등록도 물거품이 된다.
금융당국은 바이낸스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지난달 바이낸스가 고팍스 지분을 처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낸스 지분을 받아낼 투자자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