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수사와 재판 7년의 총평가, 수사 과정, 재판 결과, 바뀐 정치 지형, 직권남용 수사가 남긴 폐해를 다룬 이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2022년 12월 27일, 윤석열 정부의 첫 신년 특별사면(특사) 명단에 국정농단 가담자 20명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화이트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뿐 아니라,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있었다.
이날 사면 브리핑에 나선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국정수행 과정에서 당시 직책과 직무상 잘못된 관행에 따라 불법행위를 저질러 법의 심판을 받았던 공직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국정농단이란 '범죄'가 당시 수사검사(박영수 특검 파견)의 입을 통해 '관행'으로 치환된 순간이었다.
대통령 사면을 둘러싼 정권 수뇌부의 모순적 태도는 '촛불여론'과 함께 출범한 문재인 정부라고 해서 다르진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종료를 5개월 앞둔 2021년 12월, 형기 17년을 남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복권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들을 생각하면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는데, 임기 내내 '적폐청산'을 내걸고 박근혜 정부 인사들을 구속했던 전례에 비춰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래서 당시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야당을 분열시키려는 사면"(윤석열 대선 후보와 친박 진영을 분리하려는 시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인적 구성으로 볼 때 이명박·박근혜를 계승하는 것으로 보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 뒤론 사면을 통한 '국정농단 지우기' 기조가 더 강해졌다. 윤 대통령은 첫 특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복권시켜 경영의 족쇄를 완전히 풀어줬다. 또 2022년 말 신년 특사로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안봉근·정호성·이재만 전 비서관, 우 전 민정수석 등 농단의 주역들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면됐다.
올해 2월 설 특사에서는 김 전 비서실장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특사 대상에 올랐다. 특히 그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불복절차를 밟겠다고 예고했지만, 결국 재상고하지 않았다. 지난달 1일 형이 확정되면서 사면 심사 대상이 됐고, 바로 뒷날 법무부의 사면심사위가 열렸다. 그리고 며칠 뒤 특사 대상에 오르면서 '약속사면' 논란이 불거졌다.
수년간 재판을 통해 국정농단 가담자들에게 죗값을 매겼던 사법부. 법원 사람들은 대통령이 국정농단을 사면으로 용서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여러 전·현직 법관들은 "기소해 놓고 사면할 바엔 기소를 안 하는 게 낫다"며 강하게 쓴소리를 했다.
사면은 현행 사법체계로 구제가 어려운 경우를 대비하는 비상 장치의 성격인데, 정권의 자의적·정치적 판단에 따라 남용되고 있다는 평가가 법조계에선 나온다. 오지원 변호사는 "사면은 중대범죄에 있어선 행해져선 안 되고 무엇보다 생계가 너무나 어렵거나 억울할 수 있는 일반 국민들을 위한 마지막 보루일 때 국민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며 "적어도 국정농단, 참사 관여 등으로 인한 사면은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에서는 부정부패 공직자나 선거법 위반 사범 등에 대해, 덴마크는 행정부 고위 관료에 대한 사면이 금지된다.
사면에 원칙과 기준이 없다는 문제도 있다. 본보 인터뷰에 응한 한 현직 부장판사는 "생계형 범죄자에 대한 사면과 달리 정치인 사면에는 기준이 없다"며 "명확하고 납득 가능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사면 과정이 국민과의 소통도 없이 너무도 비민주·비역사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앞서 사면된) 관련자에 대한 형평성 때문에 사면한다"고도 지적했다.
특사 단행 때마다 '국민 통합' 메시지가 등장하지만, 오히려 실제론 '국론 분열'을 유발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고검장 출신 법조인은 "(사면) 법이 있다고 해서 쓰라는 법이 아니고, 가능한 한 안 써야 된다는 법"이라며 "이번 정부 들어서도 결국 사면으로 '편 가르기'를 했다"고 꼬집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역시 "반대로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적 합의가 안 되는 게 적절한지 돌아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사면권이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반론도 있었다. 한 수도권 검찰청 부장검사는 "사면권의 본질은 대통령 고유권이기에 수사와 재판을 다 뛰어넘는다"고 강조했다. 한 현직 부장판사도 "사면은 정치 영역이라 평가할 만한 영역은 아니다"라며 "판결 효력에 대해서 면해주겠다는 정치적 결단이기 때문에 이미 법원의 판결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판결권과 사면권을 엄격히 분리해야 하고, 그 평가도 별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