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참히 잘려 나간 버드나무 300그루… '전주천'에 무슨 일이

입력
2024.03.1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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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환경단체 "전주시장 공약 이행" 의심 
정부 지침 무시, 전문가 의견 묵살 의혹도
市 "홍수 예방 목적", 남은 90그루 운명은

전북 전주시가 홍수 예방을 목적으로 전주천과 삼천 주변의 자생나무 330여 그루를 잘라낸 것을 두고 환경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가 우범기 전주시장의 공약 사업 이행을 위해 무리한 벌목을 강행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10일 전주시 등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29일 전주천 20㎞ 구간과 삼천 11㎞ 구간에 있는 버드나무 76그루를 벌목했다. 지난해 3월 260여 그루를 베어낸 데 이어 두 번째다.

전주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전주천은 1급수 하천으로, 삼천과 합류해 만경강으로 흐른다. 천변에는 오랫동안 자생한 버드나무 400여 그루가 양쪽에 줄지어 있다. 시는 그동안 전북환경운동연합, 전북녹색연합 등 시민단체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주생태하천협의회와 논의를 거쳐 여러 줄기가 뒤엉켜 밀식(빽빽하게 심음)된 나무는 가지치기를 하고, 횡단으로 자라 물 흐름을 방해하는 나무만 벌목해 하천 주변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작년 3월과 올해 2월엔 생태하천협의회 반대에도 벌목을 강행했다. 예산만 8,000만 원이 투입됐다.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명예교수는 “전주천·삼천 주변 버드나무 뿌리는 튼튼해, 홍수를 유발할 정도로 밀식된 상태가 아니다”며 “전문가들이 잘라낼 정도는 아니라고 의견을 냈는데 시가 무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부로 나무를 잘라내면 안 된다는 정부 지침을 어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 고시 ‘하천점용허가 세부기준’ 제43조엔 ‘시·도지사는 나무의 번성 범위, 높이, 밀생 상황, 수종에 대해 조사해 홍수 피해를 막는 치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벌채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환경단체들은 우 시장 공약 사업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나무를 베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공약 사업이란 2030년까지 국비 등 7,085억 원을 투입해 홍수 피해 예방 및 유지용수 확보, 수변 인프라를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시는 천 주변에 2028년까지 577억 원을 들여 인공폭포, 물놀이장, 전망대, 체육시설, 공연장 등을 설치해 전시·공연·놀이 등 통합문화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우 시장이 지난달 ‘전주천·삼천 명품하천 365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등은 “버드나무로 인해 홍수 피해가 난 사례가 없는데 시가 ‘통합문화공간 조성 사업’ 추진을 위해 수십 년간 잘 자라던 나무를 막무가내로 잘라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양재 생태하천협의회 사무국장도 “2006년, 2011년, 2020년에 많은 비가 내렸을 때에도 아무 문제가 없던 나무들”이라며 “시에 벌목 이유에 대한 근거 자료를 보여 달라고 했지만 묵묵부답”이라고 했다.

전주시는 시민 안전을 위해 일상 관리 차원에서 사전 조치를 취한 것일 뿐 통합문화공간 사업과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하천 유지·보수 매뉴얼상 홍수 예방을 위해 자생 수목에 대한 위험 요소는 없애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시는 남아 있는 버드나무 90그루의 경우 제거에 앞서 생태하천협의회와 논의를 거칠 방침이다. 그러나 양측 의견 차이가 커 조율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전주= 김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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