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m 구조물도 한 번에 '뚝딱'… 21세기 연금술 3D프린팅

입력
2024.03.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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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초대형 3D프린팅 전문 울산 '쓰리디팩토리'
수축·변형 제어 내구성↑, 빠르고 저렴하게 건설
자동차 등 쓰임 '무궁무진', "연구비 감소 아쉬워"

편집자주

지역경제 활성화는 뿌리기업의 도약에서 시작됩니다. 수도권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고군분투하는 전국의 뿌리기업 얘기들을 전합니다.

다관절로봇 형태 3차원(3D)프린터가 프로그램에 입력된 도면을 따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아내듯 프린터 헤드에서 압출된 소재가 층층이 쌓인다. 단순하고 지루해 보이는 작업이지만 결과물은 입이 떡 벌어진다. 집, 도로, 자동차, 선박, 항공, 심지어 인체조직이나 음식까지 뚝딱 만들어 낸다. 시장 성장세도 가파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3D프린팅 시장규모는 2018년 98억 달러에서 지난해 223억9,000만 달러로 5년 사이 2배 이상 커졌고, 2032년에는 1,502억 달러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5일 국내 최대 3D프린팅 특화지역인 울산테크노일반산단에서 만난 최홍관(53) ‘쓰리디팩토리’ 대표는 “3D프린팅은 별도의 금형이 필요 없고 여러 개 부품을 한 번에 생산할 수 있어, 공정을 단순화하면서도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며 “소량 다품종 생산에 유리해 맞춤형 제작이 필요한 각종 분야에 두루 활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초대형 구조물 빠르고 저렴하게

쓰리디팩토리는 2012년 설립된 ‘초대형’ 3D프린팅 전문기업이다. 최대 아파트 6층 높이와 맞먹는 규모의 입체 구조물을 생산해 자동차, 중공업, 건설사 등에 납품한다. 국내 3D프린팅 산업이 아직 시제품 제작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회사의 실적은 이례적이다.

비결은 단연 기술력이다. 적층‧가공 동시 작업으로 제작시간을 절반으로 줄인 하이브리드 3D프린팅 기술을 비롯해 8건의 산업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가로 2.5m, 세로 16m, 높이 1.5m 크기 제품을 조립 과정 없이 한 번에 찍어낼 수 있는 복합소재 초대형 3D프린터도 개발했다. 최 대표는 “두 가지 이상의 재료를 혼합해 강도, 탄성 등 성능을 최적화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며 “제품의 크기가 커질수록 쌓는 과정에서 수축‧변형과 같은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각 소재의 특성을 파악해 이를 제어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라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기술력은 기본, 작품성은 덤

쓰리디팩토리가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분야는 조경구조물이다. 2020년 현대건설과 손잡고 옥외용 벤치를 특허출원했다. 당시 최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시안을 토대로 3D프린팅 기법으로 출력해 만든 폭 1m, 높이 1m, 길이 8m의 비정형 벤치는 현대건설이 시공한 아파트 10여 곳에 설치돼 화제를 모았다. 2021년 미국 ‘디자인 어워드(Architizer A+ Product Award)’ 본상에 이어 2022년 국토교통부 주관 ‘스마트건설 챌린지’에서 3D프린팅을 활용한 비정형 시공 프로세스 선진화 혁신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과 기술력을 함께 인정받았다.

2022년에는 또 한 번 세계 최초로 3D프린팅 놀이터를 제작해 글로벌 3대 디자인 공모전으로 꼽히는 미국 ‘IDEA 디자인 어워드 2023’에서 본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뽐냈다. 최근에는 3D프린팅 주택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다만 국내에선 관련법이 없어 3D프린팅 주택을 지어도 주거가 불가능해 캠핑장에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최 대표는 공장 한쪽에 세워둔 26㎡(8평) 규모 3D프린팅 원룸을 가리키며 “중동 수출을 앞두고 있다. 공기는 절반 이상, 비용은 최소 3분의 1을 줄일 수 있어 반응이 좋다”면서 “우리나라 건설현장 인력난 등을 고려하면 이른바 ‘무인건축’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자신했다.


지역특화 산업 접목, 정부 투자 관건

지역 주력산업인 자동차 역시 쓰리디팩토리가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다. 원래 수도권에 세운 공장을 2016년 울산으로 옮긴 것도 고객사인 현대차 등과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2021년에는 ‘자동차 부품 검사구용 3D프린팅’을 개발, 국가기술표준원 신기술 인증도 받았다. 검사구는 부품 등이 설계대로 생산됐는지 확인하는 측정도구로 기존에는 제작에 1개월 이상이 소요됐지만 신기술 덕에 제작 기간은 50% 이상, 비용은 30% 이상 절감됐다.

제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보조 용구뿐 아니라 신차개발에서도 3D프린팅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형상 구현에 제약이 없는 데다 디자인이나 조립 오류를 줄이고 소비자별 맞춤제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BMW, 포드, 폭스바겐 등 해외에선 이미 상용화됐지만 국내 완성차 업계는 이제 막 진입 단계다. 최 대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3D프린팅을 접목한 사업화와 업계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는 오히려 끊겼다”며 “지금이 기술을 가속화할 수 있는 시기인 만큼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