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체계 대수술’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장시간 과다 노동에 시달리는 전공의 처우 및 수련제도 개선을 논의하고, 의료개혁을 진두지휘할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 출범 준비를 시작했다. 시범사업으로 첫발을 뗀 ‘진료지원(PA)간호사 제도화’도 추진한다. 단순히 의대 증원을 넘어 의료계 시스템을 새로 설계하는 수준으로 변화 폭이 크다. 의사계 반발에도 의료개혁을 흔들림 없이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다만 의대ㆍ대학병원 교수들까지 사직서 제출을 결의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여 의정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는 분위기다.
정부는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전공의 연속근무 시간을 현행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제한하는 시범사업을 최대한 빨리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오후에는 전문가 토론회를 열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방안도 논의했다. 교육 담당 전문의 배치, 수련비용 지원, 지역별 훈련센터 건립 등 다양한 제안이 나왔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브리핑에서 “모든 내용을 하나하나 검토해 신속히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에겐 매달 100만 원씩 수련비용이 지급된다. 이미 올해 복지부 예산에 포함됐던 정책으로 1월부터 소급해 지원한다. 다른 진료과에서 소아 환자를 담당한 전공의들도 받을 수 있다. 단, 근무지 이탈 기간은 제외된다. 향후 분만과 응급 등 다른 필수의료 과목으로도 지원 범위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정부는 병원에 남았거나 사직서 제출 후 다시 돌아온 전공의 보호에도 나섰다.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 배신자 낙인, 협박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전공의 보호ㆍ신고센터’를 설치해 핫라인 형태로 운영한다. 복귀자 실명을 거론한 온라인 게시물에 대해선 즉각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전공의가 원하는 경우 수련병원 변경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보호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박 차관은 “환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전공의들은 용기를 내달라”고 호소했다.
의료계 새판 짜기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필수의료 4대 종합대책 이행 방안을 다룰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출범에 앞서 이날부터 ‘특위 준비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됐다.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중점 과제를 점검하고 특위 구성에 대해 자문하는 역할을 맡는다. 복지부, 법무부, 금융위원회 담당 국장이 정부 실무단으로 참여하고, 노홍인 서울대 의대 교수, 윤석준 고려대 의대 교수,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외부 자문단으로 합류했다. 첫 회의에선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비급여 제도 개선, 수련ㆍ면허 개편, 지역필수의사제 등 여러 의제의 우선순위 등이 논의됐다.
정부는 의사들이 반발하는 PA간호사 합법화 의지도 굽히지 않았다.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통해 간호사가 의사 업무 일부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했고, 8일부터는 그동안 허용 여부가 불분명했던 간호사 업무 영역을 명확히 규정한 ‘보완 지침’이 각 수련병원에 적용됐다.
박 차관은 “지난해 6월부터 의료계와 환자단체, 학계 등이 참여한 협의체에서 시범사업을 준비해 왔다”고 설명하면서 “전문의 중심의 병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PA간호사 제도화가 필요하며 이는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정상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대통령 거부권에 가로막혀 좌초됐던 간호법 제정을 재추진해 달라는 대한간호협회 요청에 대해서도 “간호사들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전공의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비상진료체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중이라 판단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입원환자는 전공의 집단행동 이전인 지난달 1~7일과 비교해 이달 4일 기준 40.7% 줄었으나 7일에는 감소폭이 33.4%로 다소 회복됐고,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입원환자 수도 3,000명대로 평상시와 비슷하다. 정부는 예비비 1,285억 원과 건강보험 재정 1,882억 원을 투입하기로 한 데 이어 신규 외래환자는 2차 병원에서 먼저 검사와 의뢰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예측하긴 어렵다. 환자 곁을 지키고 있던 대학병원 교수들이 ‘후배 보호’를 내세워 사직서 제출을 결의하는 등 집단행동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빅5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서울대 의대, 연세대 의대, 울산대 의대, 가톨릭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교수협의회가 공동 대응을 모색하기로 했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9일 비공개 총회를 연다. 박 차관은 “교수들이 환자 곁을 떠나지 않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의견을 경청하고 필요한 대화를 해 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