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임기 중 마지막 연례 국정연설(연두교서)에서 임신중지(낙태)권 이슈를 집중 부각했다. 기업에서 세금을 더 걷고 '부자 증세'로 정부 적자를 메우겠다고도 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지층인 여성과 중산층을 단속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1시간 8분간 연설을 했다. 무엇보다 임신중지권 쟁점 준비에 공들인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이 메시지는 전진 배치됐다. 연설 초반 민주주의 위협 경고에 이어 곧바로 이어진 주장이 임신중지권 옹호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보수 우위로 재편된 연방대법원이 임신 6개월까지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해 오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2022년 폐기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미국인이 내게 선택권(임신중지)을 지지하는 의회를 만들어 준다면 ‘로 대 웨이드’를 법으로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입법으로 임신중지권을 보장하겠다는 뜻이다.
비중도 확 키웠다. 1분도 할애하지 않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4분 가까이 다뤘다. 난임 치료인 체외 인공수정(IVF)으로 아이를 얻으려다 냉동 배아도 인간으로 봐야 한다는 앨라배마주(州) 대법원 판결로 좌절한 주민 라토랴 비슬리,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텍사스 주법 탓에 비상 상황에서 시술을 거부당한 케이트 콕스를 초청해 연설 중 소개하기도 했다.
낙태 대신 굳이 ‘생식의 자유’라는 표현만 쓴 것도 신경 쓴 흔적이다. 민주당은 여성의 임신·출산 선택권 보장 공약을 전략적으로 앞세워 패배가 예상됐던 경합 지역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임신중지 이슈를 고리로 대선 판을 끌고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더불어 바이든 대통령이 내세운 약속은 ‘부자 증세’였다. “내 목표는 대기업과 아주 부유한 사람들이 정당한 몫을 내도록 만들어 연방 적자를 3조 달러(약 4,000조 원) 더 줄이는 것”이라며 현재 15%인 법인세 최저세율을 21%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중산층 구애 전략이었다. 가자지구 해안 임시 부두 건설 계획을 공개한 것도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지지 때문에 돌아선 아랍계·청년 유권자를 되돌리기 위한 의도로 해석됐다.
외교안보 원칙도 언급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두고 “분쟁을 원하지는 않지만 불공정한 경제 관행에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태평양에서 인도 호주 일본 한국 등 동맹과의 파트너십을 재활성화했다”며 한국을 거명했다. 그러나 올해 국정연설에서도 북한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선 상대인 공화당 후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라는 이름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임자는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에게 조아렸지만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것", "(트럼프 지지자들의 2021년 워싱턴 의회 난입 폭동인) 1·6 사태와 2020년 대선 사기 주장은 남북전쟁 이후 우리 민주주의 최대 위협" 등의 비판을 이어갔다.
또 “원한, 복수, 보복이라는 미국의 다른 이야기를 보는 동년배가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연설 말미 주장은 고령 논란까지 감안한 포석이다. 두 사람은 각각 81세와 77세로, 네 살 차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실시간 반박했다. “그의 머리는 뒤보다 앞이 낫다”고 바이든 대통령 나이를 조롱 소재로 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