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출국금지 상태에서 주(駐) 호주 대사로 임명돼 논란을 빚고 있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그제 전격 소환 조사했다. 출국금지 사실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이다. 법무부는 기다렸다는 듯 어제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잘 짜인 각본처럼 일사천리다.
이 전 장관은 ‘채모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숨진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조사와 관련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그해 9월 야당이 고발하고 탄핵을 추진하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공수처는 수사를 본격화하기 시작한 올 1월 그를 출국금지했다.
인사검증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출국금지든 뭐든 공수처 수사 상황은 일절 알 수 없다”고 했다.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출국금지를 결정하는 부처도, 1차 인사검증을 하는 부처도 모두 법무부다. 한 지붕에 딴살림을 차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출국금지 사실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백번 양보해 그렇다 쳐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형 사건의 핵심 피고발인을 대사로 임명했다면 인사 시스템에 심각한 구멍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윗선’ 수사를 차단하기 위한 도피성 인사라는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 황당한 건 공수처의 행태다. 대사 임명 직후 공수처 관계자는 “국가를 대표하는 인사로 출국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채 상병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독립수사기관의 인식이라고 믿기 어렵다. 그래놓고 하위직급부터 단계적으로 조사하는 통상 수사 절차와 달리 덜컥 이 전 장관을 소환했다. 요식행위임을 보여주듯 조사시간도 달랑 4시간에 불과했다.
법무부는 어제 곧바로 이 전 장관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여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최근 출석 조사가 이뤄진 점 등을 고려했다”고 하니 출금해제 명분을 위한 기관 간 협의가 있었음을 자인하는 격이다. 이 전 장관이 향후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다. 일단 출국하면 강제수사 등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대로 출국해 대사로 취임한다면 대통령도, 법무부도, 공수처도 모두 피의자 도피를 도운 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