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행동 사태가 길어지면서 불똥이 여러 곳으로 튀고 있다. '혈액 수급' 관리에까지 경고등이 켜졌다. 수술 연기나 취소로 병원에 공급되는 혈액량이 줄었는데, 보존기한이 짧은 일부 혈액이 갈 곳을 잃고 폐기되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헌혈 감소로 부족한 혈액이 눈 뜨고 버려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태가 끝나면 수요가 다시 폭증할 가능성이 커 관계 기관들이 혈액 재고 유지에 애를 먹고 있다.
8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전공의 파업이 시작된 지난달 20일부터 같은 달 29일까지 열흘간 의료기관에 공급된 혈액은 총 11만5,000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12만3,445건)과 비교해 확실히 공급이 줄었다. 파업 여파로 대형병원의 수술이 감소한 영향이 컸다. 이른바 '빅5 병원' 등은 예정된 수술의 절반 정도를 취소하거나 미루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쓰임새가 사라진 일부 혈액이 어쩔 수 없이 폐기되고 있다. 특히 암·백혈병 환자에게 꼭 필요하지만, 희귀한 '혈소판 혈액'이 버려져 심각성이 더하다. 혈소판 혈액의 보관 가능 기간이 닷새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 기간 유효기간 경과로 폐기된 혈액은 23건이었고, 대다수가 혈소판 혈액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에도 폐기 혈액은 있었지만, 한 달에 30~40건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파업이 길어질수록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헌혈 기관들은 혈소판 혈액 적정 재고량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적십자사는 전공의 파업 장기화에 대비해 혈소판 헌혈 대신 보존기한이 긴 전혈 등을 권장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한마음혈액원도 지난달 23~25일 혈소판 헌혈을 일시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같은 달 26일부터는 사전 예약자에 한해서만 혈소판 채혈을 진행해 폐기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한마음혈액원 관계자는 "아직 버려진 혈액이 나오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기관의 대책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라 여러 부작용을 유발한다. 일례로 일부 헌혈을 제한하면 가뜩이나 저조한 헌혈 참여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수요 대비 혈액 공급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파업 종료 이후다. 병원들이 수술 일정을 정상화하면 혈액 수요가 단기간에 급증하게 되고, 대규모 혈액 부족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20년 9월 의료계 집단휴진 때도 종료 시점에 적정 혈액 보유량(5일)을 밑도는 날이 다수였다. 밀린 수술이 일제히 재개됐기 때문이다. 특히 O형 혈액 재고량은 한때 3.3일을 기록해 헌혈 참여 독려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김성주 사단법인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희귀한 혈소판 헌혈이 감소할 경우 환자가 제때 수술을 못 받을 수 있어 지금부터 수급 안정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