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국정농단 수사·재판은 대한민국에 무엇을 남겼나

입력
2024.03.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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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국정농단 보고서: ①총평가]

편집자주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선고가 나온 지 7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국정농단'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수사와 재판은 모두 마무리 됐습니다. 국정농단은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재편했을 뿐 아니라, 법원과 검찰 조직에도 큰 파장을 남겼습니다. 국정농단이 이 나라에 남긴 유산과 숙제는 무엇인지, 이 사태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찬찬히 돌아보기 위해, 한국일보는 법조인 50명을 상대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수사·재판 과정에 관여했거나, 사건을 가까이서 살펴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증언과 각종 통계, 기록 등을 바탕으로 '2,555일(7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해 보려 합니다.


국정농단. 누군가 나라의 정치를 농단(壟斷)했다는 뜻이다.

언덕 '농'에 끊을 '단'을 쓰는 이 단어는 유학경전 '맹자'에 나오는 표현이다. '깎아지른 듯한 높은 언덕'을 뜻한다. 그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 사사로이 모든 이익을 독식하는 행위, 그게 농단이다. 대한민국 권부 꼭대기인 청와대 안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손(비선실세)이 대통령 일거수일투족을 좌지우지하며 사익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35% 지지를 무조건 먹고 들어가던 '콘크리트 지지율'의 원조, 박근혜가 무너졌다. 임기말 그의 지지율(갤럽 기준)은 4%로 수직낙하했고, 2004년과 2012년 두 차례나 보수정당을 궤멸 위기에서 구한 '선거의 여왕'은 결국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7주년을 맞은 지금에서야, 한 편의 대하드라마 같았던 '국정농단 사태'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달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판결 확정을 끝으로 관련 재판은 모두 마무리됐고,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은 사면까지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됐고, 그 여당이 박 전 대통령을 지근 보좌한 변호사를 총선 후보로 지명하는 기묘한 반전까지 이뤄졌다.

국정농단에서 시작된 정치·사법구조가 7년 만에 비로소 끝을 맺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이 시점에서, 한국일보는 우리 사회를 휩쓸고 간 국정농단이 남긴 것들이 무엇인지, 국정농단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들여다 보기로 했다.

당시 국정농단 수사·재판에 직접 관여했거나 머지 않은 거리에서 지켜봤던 판사·검사·변호사·헌법재판연구관·교수 등 법조계 인사 50명에게 역사적·사법적 평가를 요청했다. 사안의 민감성 탓에 이들은 대부분 익명 처리를 원했다.


검찰 수사라인이 기억하는 국정농단

"최고 권력자라도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종을 울린 사건이죠."
(당시 검찰 수사라인에 있던 고위 간부)

가장 먼저 본보는 '국정농단 수사가 과연 정당했는가'를 물었다.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법조인들은 농단을 엄단하라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재직하며 국정농단 수사에 관여했던 A 변호사는 "시간이 지나니까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 같은데, 수사가 과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단언했다. 그는 "(당시 수사팀은) 나중에라도 누구든 문제를 삼을 수 있는 수사라는 생각을 하면서 항상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사하려고 노력했다"고 자부했다.

일선 검찰청 공안부장과 차장검사를 지낸 B 변호사 역시 "국정농단은 국민 모두가 겪었고, 국민이 피해자인 사건이었다"며 "안 할 도리가 없는 수사였고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사였다"고 말했다. 수사 지휘라인에 있던 전직 검찰 고위간부 C 변호사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이후 진행됐던 다른 수사들과 달리 국정농단 사건은 대부분 유죄 판결이 나왔다"며 "최고 권력자라도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린 계기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가의 보도 '직권남용'의 시작

"그때 우린 모두 뭔가에 마취된 상태였었죠."
(국정농단 사태 초기를 떠올린 한 법대 교수)

그러나 이 사건을 외부에서 지켜본 일부 법조인들은 당시 탄핵·수사·재판이 적절했는지는 차분히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형사법 교수는 "당시에 우리 모두 무언가에 마취된 상태였다"고 했는데, 국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과도한 수사·구속·재판이 이뤄졌음에도 당시 아무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취지다.

특히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직권남용죄'나 '포괄적 뇌물' 혹은 '경제적 공동체' 개념을 무리하게 적용해 먼지털이식 수사를 진행했고, 법원이 단죄를 열망하는 여론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관 경력 30년차를 바라보는 D 판사가 본보 인터뷰에서 바로 그렇게 주장했다. 그는 "직권남용이 (국정농단 이전에) 사문화됐던 것은 이 죄목을 쓰기 시작하면 안 걸릴 사람이 없고 가장 정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죄목이었기 때문이었다"며 "그런데 당시 특검은 법률 용어도 아닌 '경제적 공동체'라는 개념을 사용해 범죄 공모 관계를 너무 넓혀놓았던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형사 재판을 오래 담당했던 이 판사는 그때 분위기가 여론을 거스르기 어려웠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국민이 처벌을 원하면 (사회적으로는) 그게 정답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법부는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할 책무도 있다"며 "국정농단 국면에서 사법부가 그 책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법리를 되도록 엄격하게, 가능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라며 "다 같이 시대적 최면에 걸렸던 것이 아닐까 반성을 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국정농단 수사·재판이 남긴 것


"(국정농단 이후) 어떻게 하면 처벌을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한 '기술사법'이 횡행하게 됐습니다."
(전직 검찰 고위간부)

국정농단 수사는 검찰 조직의 성격도 판이하게 바꾸었다. 국정농단은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사법농단 수사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검찰이 직권남용죄를 '전가의 보도'처럼 쓰며 검찰공화국을 공고화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검 파견 경험이 있는 차장검사 출신 E 변호사는 "사건의 본질을 평가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처벌할 수 있을까에 집중한 기술사법이 횡행했다"고 그간 검찰의 변화를 평가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의 칼을 이용해 전 정권 사람들을 궁지에 몰았고, 결과적으로 검찰을 정치 집단화시켰다는 것이다.

국정농단은 대통령 탄핵 소추가 실제 파면(헌재 인용)으로 이어진 헌정 사상 유일무이한 사례였기에, 여의도와 서초동의 풍경을 크게 바꿨다.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이상, 그 누구도 탄핵의 예외가 될 순 없었다. 대통령 파면은 헌법에 나온 절차대로 진행된 매우 헌법적인 과정이었지만, 그 이후론 상대 정치 진영의 힘을 빼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도 빈번하게 활용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부당한 지휘권을 행사한 혐의 등으로 2020년 7월 탄핵소추안이 상정됐지만, 국회에서 부결됐다. 홍남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가경정 예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핵 압박을 받았다.

정권이 바뀌고도 마찬가지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2월 탄핵소추됐지만, 다섯 달 뒤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됐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탄핵 압박을 받다가 국회 표결 전 사퇴하기도 했다.

그 끝이 사법적 결론(대법원 판결이나 '헌재 결정)이 아닌 대통령의 정치적 은전(사면권 행사)이었다는 점에서, 국정농단은 이도 저도 아닌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그 때문에 여전히 정치적 논란의 여지를 다 지우지 못했다는 비판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현직 법관 재직 시절 법원 안에서 활발한 의견 개진을 피하지 않았던 부장판사 출신 F 변호사는 "결국 사면은 재심 등 다른 방법으로도 도저히 구제할 방법이 없을 때를 위해 마련된 예외적 권한"이라며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사면은 시대에 맞지 않는 통치행위였다"고 결론 냈다.

※국정농단 수사 과정, 재판 결과, 파급 효과, 달라진 정치 지형 등을 다루는 후속 기사들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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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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