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전 잃은 원주민, 원조는 경리단길…임대인도 결국 공멸[성수동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24.03.13 12:00
<하>사라지는 자동차 정비의 메카
젠트리피케이션, 성수동서 조짐
쇠락한 핫플, 경리단길·가로수길
임대료 인하에 부활한 로데오거리


팝업스토어로 뜬 성수동에서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특정 지역이 활성화하면서 임대료 상승 등으로 기존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둥지 내몰림 현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의 대표 사례는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이다. 이태원 뒤편에 있는 경리단길은 2010년 전후로 특색 있는 식당, 카페, 상점이 들어서면서 주목을 받았다. 망리단길(망원동), 연리단길(연남동), 황리단길(경주) 등 이후 생긴 신흥 상권마다 하나같이 '~리단길'이 붙을 정도로 경리단길은 재생한 도심 공간의 상징과도 같았다.

주말이면 20·30대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경리단길은 2015, 2016년을 기점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경리단길이 처음 떴을 때만 해도 비교적 저렴했던 상가 임대료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두세 배 껑충 뛴 월세를 견디지 못하고 접는 가게가 늘자 경리단길 상가는 점점 비어갔다. 임대인 역시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공멸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무너진 상권이 되살아나지 못하는 현상은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서도 보인다. 젊은 층이 선호하는 의류 브랜드가 많아 패션 성지로 불리는 가로수길은 최근까지도 발길이 끊이지 않은 '핫플레이스'였다. 매장 입장에서 가로수길은 돈을 잘 버는 '노른자 땅'이었다.

실제 서울시가 시내 145개 상권의 1㎡ 월평균 매출액을 비교한 결과 가로수길은 2021, 2022년 모두 61만 원대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 수치는 41만7,600원으로 추락하며 71위에 머물렀다. 임대료 급등에 따른 인기 매장 철수로 가로수길이 존재감을 잃으면서 남은 매장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정부, 서울시 등은 2018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등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월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연 최대 9%에서 5%로 낮추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다만 임차인이 관리비를 지나치게 많이 청구하는 등 제도상 허점이 남아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려면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2000년대 젊음의 거리로 통했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가 한 예다. 로데오거리는 경리단길에 앞서 월세 상승으로 쇠락한 젠트리피케이션 원조 격이다. 로데오거리를 되살린 건 임대인이었다. 2017년 상가 주인 10여 명이 모여 임대료를 30~50%를 내리는 착한 임대인 운동을 벌인 후 로데오거리는 옛 명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박경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