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중국 2인자

입력
2024.03.07 17: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부패한 자들, 나머지 하나는 나를 위한 것이다."

1998년부터 4년간 중국 총리를 지낸 주룽지가 한 말이다. 그는 부정부패 척결과 국유기업 개혁,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을 통해 중국을 글로벌 경제 무대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 총리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이 전 세계의 이목을 받게 된 것도 그로부터였다. 평소 접근이 힘든 중국의 2인자가 직접 내외신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하는 2시간 안팎의 생방송은 중국이 열려 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 “14억 명 인구 중 6억 명은 월 수입이 1,000위안(약 18만 원)에 불과하다.” 2020년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당시 리커창 총리가 한 말도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시진핑 주석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약 1,300만 원)를 넘었다며 자화자찬하던 상황에서 실제로는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이라며 찬물을 끼얹은 리 총리의 언급은 충격이었다. 한때 국가주석 1순위로 거론되던 그는 중국공산당 내 파벌 경쟁에서 시진핑에게 밀려 결국 2인자인 총리에 그쳤고 이후에도 줄곧 시 주석의 견제를 받았다. 지난해 3월 퇴임 당시 남긴 “사람이 하는 일, 하늘이 보고 있다”는 말은 시 주석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그리고 7개월 후, 그가 돌연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불과 68세였다.

□ 30여 년 이어진 중국 총리의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이 돌연 폐지됐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이 공고해지면서 중국 2인자가 설 무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시 주석 비서실장 출신인 현 리창 총리에게 2인자 역할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2022년 당 대회 때 후진타오 전 주석을 회의석상에서 끌어낼 때부터 불길했다. 더 이상 중국에 2인자는 없다.

□ 그동안 개혁개방으로 성장해 온 중국이 다시 문을 닫고 담을 쌓고 있다.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5% 안팎’으로 제시하면서도 국방비는 7.2%나 늘린 1조6,700억 위안(약 310조 원)으로 책정한 대목도 심상찮다. 시 주석 1인 독재 체제로 가는 중국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며 기회와 위험을 세심히 살펴야 할 때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