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바로 보기 | 5부작 | 15세 이상
“피라미드는 위로부터 아니면 밑에서부터 만들어졌나요?”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질문이다. 방송 진행자 필로미나 컹크(다이앤 모건)는 뻔뻔하고 집요하게 이런 질문을 쏟아낸다. 상대는 내로라하는 학자와 전문가들. 당황하거나 웃거나 굳은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어이없어도 진지하게 답변하려 한다. 질의응답의 주제는 인류의 역사. 우문현답을 듣다 보면 인류의 궤적을 다른 시각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심상치 않은 질문에서 짐작했겠지만 모큐멘터리(다큐멘터리처럼 만든 허구)다. 컹크는 진지하게 인류 문명사를 탐방하는 기자처럼 보이나 가짜다. 영국 코미디언 겸 방송 진행자인 다이앤 모건이 만든 캐릭터다. 저런 바보 같은 질문과 발언을 왜 하냐고 화를 내면 이미 모큐멘터리의 속임수에 넘어간 거다.
컹크는 어이없는 말들을 이어간다. ‘소비에트연방(Soviet Union)’을 ‘소비에트양파(Soviet Onion)’라고 말한다. 인터뷰하는 학자는 당황하다가 “소련의 채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할 수 있죠”라고 맞받아친다. ‘소비에트양파’라는 표현은 그나마 양반. 컹크는 “예수가 노쇼 문화에 희생된 첫 번째 유명인이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학자가 어이없어 명확한 답을 하지 않자 “예, 아니오 중 하나만 골라 말하라”고 압박한다.
컹크는 인류가 불을 발견한 문명 초기부터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현재까지의 역사를 짚어본다. 1회마다 30분 안팎 분량인 5부작 안에 넣기에는 지나치게 방대한 내용이다. 하지만 컹크는 자기 나름의 뻔뻔한 해석을 더하며 초기 문명, 기독교와 이슬람의 발생, 르네상스, 산업혁명,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과 우주 개발을 소개한다.
컹크가 돌아보는 인류사는 잔혹하고 아이러니하다. 인류 상당수는 사랑과 평화를 내세운 기독교와 이슬람을 믿게 됐으나 종교 갈등으로 사람들은 오히려 더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산업혁명을 통해 물질적 풍요가 도래했으나 기계문명은 대량살상의 시대를 가져오기도 한다. 컹크가 인류 역사를 냉소적으로 대하고 의도적으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이유들이다.
컹크의 말들은 황당하고 잘못된 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면서 지금, 이곳을 향한 칼날을 숨기고 있기도 하다. 컹크는 “피라미드가 뾰족한 건 노숙인 취침을 막기 위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실없는 발언 같으나 노숙자들이 못 자도록 벤치 중간에 팔걸이를 만드는 씁쓸한 현실을 살피게 한다.
컹크는 자기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길게 해설하는 남성 학자에게 “맨스플레인(남성이 무턱대고 아는 척하며 설명하는 행위)”이라며 떼를 쓰기도 한다. 남성 중심 역사와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힐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