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영역 붕괴의 서막...집도·마취 빼고 간호사에 의사 업무 몰아준다

입력
2024.03.07 13:12
예비비 1254억에 건강보험서 1882억 원 수혈
간호사가 심폐소생술, 코로나 진단, 약물 투여
100개 수련병원 미복귀 전공의 1만1219명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발생한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예비비에 이어 건강보험 재정 약 1,900억 원을 투입한다. 합법적으로 의사를 대신하는 간호사의 업무는 집도와 마취 등을 빼고 사실상 전방위로 넓혔다.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가 1만 명이 넘지만 정부는 누차 경고한 대로 타협 없이 강공 일변도다.

장기화되는 의료 공백, 재정으로 틀어막는다

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앞으로 한 달간 건강보험 재정 1,882억 원을 비상진료대책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존에 시행 중인 입원 환자 진료 시 정책가산금, 응급수술 등에 대한 보상 강화 등을 연장하기 위해서다. 또 교수 등 전문의가 중환자 진료하면 지급하는 정책 지원금도 신설한다. 모두 비상진료체계 장기화에 대비한 포석이다.

이는 전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예비비 1,254억 원과는 별개라 한 달 동안 비상진료대책에 투입하는 재정은 3,136억 원으로 늘어났다. 예비비는 군의관 및 공보의 파견, 기존 인력 상주 당직, 공공의료기관 휴일 및 야간 연장 진료, 상급종합병원에서 병·의원급으로 경증환자 회송 시 수가 인상 등에 사용된다. 회송 수가는 비상진료대책을 시행한 지난달 19일부터 기존 대비 30%를 올렸는데, 현장의 어려움을 고려해 다시 인상폭을 50%로 높였다.

중대본은 현재까지 큰 혼란 없이 응급실을 포함한 비상진료체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전날 12시 기준 응급실 일반 병상 가동률은 29%,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은 71%로 전공의 집단 사직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허용 업무 구체화...간호사 역할 최대한 확대

지난달 27일부터 간호사가 합법적으로 의사 업무 일부를 수행하는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기준이 모호하다"는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보건복지부는 업무 범위를 구체화했다. 8일부터 적용하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에 따르면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간호사는 전문간호사, (가칭) 전담간호사, 일반간호사로 나눠지고 이들이 할 수 있는 업무도 명확히 구별된다.

전문간호사는 집도(수술), 마취, X레이 검사, 요로전환술, 전문의약품 처방 정도를 제외하고 검사와 중환자 관리, 처방 및 기록 등의 모든 업무가 가능하다. 응급상황에서의 심폐소생술이나 응급약물 투여, 코로나19 진단, 심전도 및 초음파 검사 등은 전체 간호사가 할 수 있다.

이번 지침은 종합병원과 전공의들이 속한 수련병원의 간호사들에게 해당된다. 이외 종합병원들은 간호사 업무범위를 설정한 뒤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관리·감독 미비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최종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에게 있다.

미복귀 전공의 행정·사법 절차 계속 진행

복지부가 주요 수련병원 100개를 대상으로 소속 전공의 1만2,225명에 대해 점검한 결과 전날 오전 11시 기준 계약 포기 및 근무지 이탈자는 1만1,219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전공의의 91.8%에 이른다. 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해 미복귀한 전공의들에게 이달 5일부터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 중이다.

교육부가 의대를 운영하는 전국 40개 대학에서 취합한 휴학 신청 의대생은 전날까지 전체 재학생의 28.9%인 5,425명이었다. 동맹휴학 승인은 한 건도 없어 모두 유효한 휴학이다.

중대본 정례 브리핑에서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사직은 집단 이기주의이고 자의가 아니었다는 양심 고백 소리가 조금씩 높아지고,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지만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전공의가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정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최대한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