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비교적 조용한 공천을 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현역 불패의 결과로 새 얼굴도 드물고 '탄핵 부정 세력'의 귀환에 꽃길을 깔아주는 등 잡음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적극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모순적인 부분도 적잖게 노출되고 있다.
텃밭 대구 공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핵심 인사 공천이 가장 큰 논란이다.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박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이자 심복인 유영하 변호사를 지난 5일 대구 달서갑에 단수 공천했다. 이를 위해 해당 지역 현역인 홍석준(초선) 의원을 공천 배제(컷오프)하며 "시스템 공천의 대원칙이 깨졌다"는 반발을 샀다. 탄핵 정국에서 최서원(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제기하며,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각을 세웠던 도태우 변호사도 대구 중남구에 공천을 받았다. 공천이 곧 당선인 대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탄핵의 상징과도 같은 인사들이 22대 국회에 나란히 입성하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정농단 수사를 주도했던 한 위원장은 7일 '유 변호사 등 공천으로 '탄핵의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탄핵은) 굉장히 오래된 얘기"라고 일축했다. 한 위원장은 그러나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음주운전 경력자 공천을 겨냥해 "그렇게 공천을 운영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민주당 후보들의 음주운전 처벌은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보다 더 오래됐다. 김용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는 2012년 벌금을 받았고, 유동철 동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04년과 2013년 벌금형을 받았다. 한 위원장이 거론한 이재명 대표 음주운전은 20년 전 일이다. 논란이 있는 공천을 합리화시키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발언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공천 후반으로 갈수록 비윤석열계 배제도 도드라지고 있다. 공관위는 최근 텃밭인 서울 강남병에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을 우선 추천(전략 공천)하며 강남병 현역인 친유승민계 유경준(초선) 의원을 컷오프했다. 당 지도부는 공천 원칙의 문제를 제기한 유 의원을 잘라내는 분위기다. 한 위원장은 이날 유 의원의 타 지역구 공천 재배치를 통한 재도전 기회 부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시스템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부정하는 분을 재배치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 대변인을 지낸 이창근 전 당협위원장을 경기 하남갑에서 하남을로 재배치하는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하남갑에 출마한 '찐윤' 이용 의원 공천을 위한 수순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이날 "(질문한) 기자 본인 지적 아니냐"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혁신 지표 중 하나로 꼽히는 현역 의원 교체율도 4년 전보다 낮다. 대구·경북(TK) 기준으로 2020년에는 현역 의원 생존율이 40%에 그쳤다. 이번엔 50%가 넘는다. 전체 현역 의원 교체율은 4년 전 43.5%에 달했지만 이번엔 35% 안팎으로 낮아졌다. 지난해 말 활동했던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용퇴나 수도권 험지 출마를 요구했던 중진 의원 상당수도 생존했다. 3선 이상 32명 중 24명(75%)이 공천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30명에 가까운 전직 의원을 공천해, 경력직이 사실상 대세를 이뤘다. 4년 전 총선에서 참패했기 때문에 탈환할 지역이 많은 국민의힘 상황을 고려하면,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