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국심사대에선 왜 애인을 감춰야 하나...소설로 쓴 이방인들

입력
2024.03.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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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고잉 홈’·서수진 ‘골드러시’
이민자 유학생 등 이방인 소설들
결국 독자의 현실과 다르지 않아

“나는 지금 JFK공항 라운지에 앉아 있다.”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했어.”

새로운 계절의 초입에 나란히 날아온 문지혁 작가의 소설집 ‘고잉 홈’과 서수진 작가의 소설집 ‘골드러시’의 첫 문장이다. 미국이라는 국가, 그것도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시작되는 두 소설집의 연결고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모두 유학생이거나 이민자 혹은 여행자라는 ‘이방인’의 이야기를 밀도 높게 눌러 담았다.

2010년 데뷔한 문 작가는 신인 서 작가의 첫 소설집인 ‘골드러시’의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아주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나라를 만났다고” 생각할 것이란 문 작가의 말은 ‘서수진의 세계’뿐 아니라 ‘문지혁의 세계’에도 유효하다. 낯설기에 ‘나’와 닮았고, 쓸쓸하기에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세계들이다.

방황하면서도 “애써 사랑하는” 문지혁의 소설들

문 작가의 ‘고잉 홈’에 실린 9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은 채로 방황한다. 그들이 모두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이는 예고된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귀국한 이민 1세대 장인이 위독해지자 한국으로 가는 국제 부부가 미국 시민권자라 서로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에서부터 부유하는 경계인의 비극이 어른거린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라는 문 작가의 평소 신념처럼 그의 뉴욕 유학 경험에서 나왔을 가난한 미국 유학생 부부(‘핑크 팰리스 러브’ ‘나이트 호크스’)나 유학생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방인의 행로에 들어섰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은 ‘한국’이라는 이미 긁어버린 낙첨 복권마저 되돌아볼 지경에 이르렀다. 돌아갈 것인가. 돌아간다고 해서 그곳을 과연 ‘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이지만, 문 작가는 이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캐러셀’에서 아빠의 재혼 후 미국 고모의 집으로 간 ‘나’는 자녀 살해 후 자살하려던 가족의 생존자로 고모에게 공개 입양된 ‘에밀리’를 만나고 “한국에 돌아가면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상상을 한다. 이처럼 ‘고잉 홈’ 속 인물들은 입양이나 이웃 등 관계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정착지로 나아간다. “세상에 정말 좋은 사람이란 건 없어요, 애써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는 ‘뜰 안의 볕’의 목사 사모의 말처럼 애써 노력하면서.

서수진 소설 속 핍진한 이민자의 삶, 이들은 ‘우리’와 다른가

디트로이트 공항 입국심사장에서 인터뷰를 받는 20대 한국 여성의 이야기인 서 작가의 단편 ‘입국심사’는 다큐멘터리로 다가온다. 미국인 남자친구를 보러 왔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대신 “관광하러 왔음을 강조해야 한다”는 소설 속 지인의 조언은 핍진하다. 결국 남자친구의 존재가 들통나고,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던 여성은 깨닫는다. 미국은 “그들의 관계가 진지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진전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골드러시’의 8편의 단편은 대부분 호주를 배경으로 한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서 작가의 소설은 현실과 밀착해 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평판에 예민”한 한국인 이민자(‘캠벨타운 임대주택’)는 물론 “일본인이 운영하는 진짜 일본 식당으로 비치기를” 원해 한국어를 금지하는 일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한국인의 밤’) 등이다. 이들은 자신도 이민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가난한 한국인’이나 난민과 선을 긋고 차별한다. 적응하고 살아남으려 노력한 탓에 도달해버린 현실이다. 이들 이방인의 현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를 서 작가는 끊임없이 묻는다.

두 소설집은 그럼에도 위로를 건넨다. ‘고잉 홈’에 “무엇보다 실은 이민자가 아닐 수 없는 우리 모두를 그리고 싶었던 소설”이라는 해설을 붙인 문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모두에게 그 여행이 너무 고되지 않기를”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책을 읽는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의 마음과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 덜 외롭기를 바란다”는 서 작가도 마찬가지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