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븐에 머리를 넣고 죽은 시인은 왜 아직도 살아 있을까

입력
2024.03.08 14:00
10면
실비아 플라스 산문 ‘맥락’

편집자주

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나는 시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에게 가닿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시들은 놀라울 만큼 멀리까지 나아가니까. 낯선 이들 사이를, 심지어 세계 저 멀리까지 나아가니까. 교실 안 선생님의 말이나 의사의 처방전보다 더 멀리, 정말 운이 좋다면 일생보다 더 오래 나아간다.”

미국의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1962년 쓴 산문 ‘맥락’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30세의 나이로 가스 오븐에 머리를 집어넣고 자살한 그는 죽었지만, 아직 살아 있습니다. 비극적인 죽음 이후 1960년대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떠오르면서죠. 국제 여성의 날인 3월 8일이 다가올 때마다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 역시 이 때문입니다. 올해 역시 ‘맥락’ 등 산문과 단편이 실린 ‘낭비 없는 밤들’이라는 플라스의 작품집이 여성의 날을 앞두고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플라스를 “작품보다 생애가 더 유명한 시인”이라고 묘사합니다. 분명 플라스의 유명세에는 불행했던 테드 휴즈와의 결혼과 파국, 그리고 요절이 영향을 미쳤지만,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고 시집 ‘에어리얼’을 비롯한 그의 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에어리얼’을 재출간한 플라스의 딸 프리다도 서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이 마치 상을 타기라도 한 양 기념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중략) 나는 어머니가 놀라운 작품을 썼고, 평생 끈질기게 따라붙은 우울증과 싸우기 위해 용감하게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짧은 인생을 시에 바쳤던 플라스의 작품은 그의 30년 남짓의 삶보다 “더 오래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상력의 죽음”(1956년 플라스의 일기)이라 여기며 치열하게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본인의 공로입니다. 길고 싸늘했던 겨울이 물러가는 조짐을 보이는 주말을 생애보다 더 뜨거웠던 그의 작품과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