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 소장파와 중진은 말하라

입력
2024.03.06 18:00
26면
민주 추락 막으려면 결기·몸부림 필요
여당 과반 압승시 국가의 구조적 변화
與 100석 이하면 대통령 거부권 막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 “이재명 대표가 불안불안하다.” 대뜸 당대표에 대한 우려부터 털어놓은 사람은 놀랍게도 수도권에서 총선전투를 앞둔 친(親)명계 의원이다. 본인은 공천을 통과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위기를 빠르게 체감하기 때문이다. 민심에 대한 ‘촉’이 본능적으로 발달했다. “아침 출근인사 때 분위기가 싸늘해 섬찟하더라. 이 정도면 서울·수도권 상당수 참패할 수 있다. 우리를 지지하는 동네인데도 명함을 안 받겠다고 손사래 치더라.” 그럼 공천파동 후유증을 빨리 벗어날 비책은 뭘까. 이 의원은 “대표직을 내려놓거나 불출마 선언하면 효과가 있을까. 선대위원장으로 임종석을 띄울 수도 없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친명 핵심인사의 희생이나 결단을 거론했더니 “실세 A의원은 말발이 안 먹히고, B의원은 자기 코가 석 자야. (신명계로 불리는) C의원이 공천실무를 너무나 잘못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2 친명계를 자처하는 다른 수도권 의원도 답답한 심경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공천파동 이슈로 주민들 만날 기운이 떨어진다. 그래도 걱정해봐야 소용 있나, 지역에 올인하고 있다. 이 대표는 불공정 공천이라 욕먹어도 정면 돌파 중이다. 사무총장 정도는 알아서 불출마해줬어야 하는데.” 당 지도부가 강권하지 않았냐고 묻자 “대표 자신이 사법리스크로 인해 누굴 압박하기 힘든 상황인 것 같다. 그러니 다른 의원과 도덕기준이 달리 적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3 반면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은 들떠 있었다. “아침엔 바쁘니 명함 대신 주먹악수를 하는데 눈빛부터 주민 반응이 달라졌다. 10명 중 7명까지 받아준다. 50대 이후는 우리 편, 40대~50대 초반은 민주당 성향이지만, 20~30대 젊은 층에서 확실히 여당 지지가 많아졌다.” ‘야당복’이 터진 이유를 묻자 이런 평가가 돌아왔다. “’비(非)명계 학살’이라지만 친문 인사들이 많지 않나. 젊은 층은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있다. 민주당 상황에 덩달아 감정이 격해진 것 같다. 이재명 대표가 친명도 함께 쳐냈어야 하는데 그걸 안 한 것이 문제다. 친명 중에 돈봉투 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은 공천배제했어야 맞다.”

민주당이 걱정하는 건 ‘투표율 비상’이다. 서울의 경우 2020년 총선 압승 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대선·지방선거 3연패 과정에서 여당 후보의 득표비중은 거의 같았다는 것이다. 야당 지지층이 투표를 안 하거나 지지를 철회하면서 승패가 갈렸다는 결론이다. 지지층을 실망시키면 선거를 외면해 참패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권심판 여론이 과반을 넘거나 다수로 확인되는 마당에 민주당의 추락을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과거 DJ 시절 사회적 명망가나 참신한 인물영입이 눈에 띈 것과 달리 ‘내 편 채우기’ 수준인 것부터 보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친명 주류의 헌신과 희생 없이 통합은 불가능하다. ‘소신’ 있는 친명 소장파나 책임감 있는 중진은 어디 갔나. 이들의 결기와 몸부림이 필요하다. 4월 총선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본 뒤 움직일 생각이면 차세대로 나설 꿈은 접는 게 낫다. 민심이 친명계의 변화를 갈망하는 지금조차 침묵한다면 총선 패배 시 퇴출당할 운명이 기다릴 뿐이다.

총선 이후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국민의힘이 과반을 넘겨 압승하면 국가의 구조적 변화가 생길 것이다. 역사전쟁과 ‘보훈정치’가 예상된다. 좌파계열 독립운동가로 재평가될 후손과 5·18 유족 연금이 없어질까 개인적으로 우려된다. 반면 여당이 100석 이하로 참패하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막히는 등 극한의 정치적 긴장상황에 놓인다. 과반 없는 1·2당 체제라면 정쟁이 일상화한 현재의 혼돈이 계속될 것이다. 전략적 투표에 특화된 한국 유권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박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