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하고 싶어서 먹던 약까지 끊었어요.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서요.”
노경석(54)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 안전강사봉사회 명예회장은 올해 1월 26일 헌혈 200회 달성 공로를 인정받아 헌혈유공장 ‘명예대장’이 됐다. 적십자사는 헌혈 횟수에 따라 30회 은장, 50회 금장, 100회 명예장, 200회 명예대장, 300회 최고명예대장을 각각 수여한다.
노 회장이 처음 헌혈과 인연을 맺은 건 1988년 고교 재학 때다. 남을 돕고 싶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망설이다 “가진 건 몸뿐이니 피라도 나누자”는 생각에 무작정 광주시 금남로에 있던 헌혈차를 찾아갔다. 그러나 체중 미달로 단칼에 거부당했다. 그는 “헌혈하려고 살 찌운 사람은 대한민국에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1년 뒤인 1989년 간신히 헌혈을 했다”고 웃었다.
그렇게 시작된 헌혈이 벌써 30여 년째다. 2010년에는 개인적인 이유로 약을 복용하게 되면서 잠시 헌혈을 멈춰야 했다. 그에겐 금연보다 헌혈을 끊는 게 더 어려웠다. 노 회장은 “피가 부족하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내 잘못인 것 같아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고심 끝에 3년 전부터 약을 끊고 다시 헌혈을 시작했다.
노 회장은 사실 지역 사회에서는 ‘응급처치 전도사’로 더 알려져 있다. 1994년 헌혈 간호사의 소개로 적십자사에서 응급처치 교육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이후 응급처치 강사가 되기 위한 교육 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내친김에 자격증까지 따버렸다.
그의 첫 구조 활동은 응급처치 교육 강사가 되고 2개월 만에 찾아왔다. 1995년 고속도로를 주행하던 중 반대편 차선에서 운전하던 차량이 혼자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고 전복됐다. 목격자들이 급히 운전자를 끌어내렸지만, 숨을 쉬지 않는 상태였다. 응급처치란 개념도 생소하던 시절이라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노 회장이 나섰다. 그는 “맥박은 있었으나 호흡이 없어 바로 인공호흡을 했다”면서 “이후 호흡이 돌아왔고 지나가는 차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시켰다”고 기억했다. 이후에도 사고를 목격할 때마다 직접 나서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 사고 현장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주어진 운명이라 생각할 때도 있다. 응급처치 교육 강사가 되기 전까진 한번도 사고를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자격증을 따고 나서부터 사고를 목격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기 시작해서다.
노 회장의 나눔 활동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헌혈도 응급처치 강의도 끝까지 멈추지 않을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