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에 아쉬운 '선공후사' 태도

입력
2024.03.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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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머크(MSD)사의 '먹는 코로나 치료제' 라게브리오를 5일 동안 복용해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충분히 없애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라게브리오 퇴출을 촉발한 영국의 파노라믹(PANORAMIC) 임상시험 결과의 하위 분석 내용으로, 2월 말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렸다. 연구진의 발표 내용을 보면 라게브리오는 복용 기간(5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유의미하게 제거하지 못했고, 복용 후에도 위험 수준의 바이러스가 남아 있었다.

이 임상은 2022년 말 영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코로나 환자 2만 5,0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대규모 임상이다. 당시 국제학술지 란셋에 실린 임상 결과를 보면 라게브리오 복용군과 위약 복용군의 입원율 및 사망률은 차이가 없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라게브리오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짓고, 2023년 2월 유럽연합(EU) 회원국에 라게브리오 승인 금지를 권고했다. 해당 권고는 일부 국가에서 라게브리오 퇴출을 몰고 온 결정타로 작용했다.

라게브리오가 해외에서 갈수록 신뢰를 상실하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훌륭한 치료제’로 대우받고 있다. 의료인으로서 황당하다. 라게브리오는 병용금기약물이 37종에 달하는 팍스로비드와 달리 1종뿐이어서 팍스로비드 대체 약으로 미국 식품의약품(FDA) 긴급 사용승인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후의 연구 결과들은 코로나 치료제로는 부적격이란 점을 여실히 보여 준다. 특히 돌연변이 문제는 심각성이 크다. 약물 내성이 커져 바이러스를 제압하기 더욱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은 논란이 증폭될 때마다 ‘라게브리오는 훌륭한 약’이라고 방어해 왔다. 보건당국이 외국산 약물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잘 보여 준다. FDA 승인 약물을 도입하면 문제가 생겨도 ‘미국이 사용 중인 약’이라는 말로 책임을 덜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반면 한 국산 치료제는 임상시험을 마친 지 1년이나 지났지만, 긴급 사용승인 신청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국산 신약 개발을 지원하겠다던 정부 다짐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코로나19는 변이가 심한 RNA 바이러스 질환이다. 언제든 세계를 다시 팬데믹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보건 당국의 과제는 국민 선택권을 넓히고, 국고 손실도 줄일 수 있는 새 치료제를 찾는 일이다. 미국과 일본이 자국산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다. 국산 후보 약물이 있다면, 쓰일 가치가 있는지 신속하게 결정하는 게 요즘 유행하는 ‘선공후사’의 태도일 것이다.


도성훈 연세우노비뇨의학과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