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뿌리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구로구 소재 한 게임회사 채용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면접관은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서 남성 비하 목적의 집게손가락을 그린 당사자로 지목된 스튜디오 뿌리 소속 제작자를 두고 불거진 논란을 그가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했다. 면접 전날엔 일부 남성 이용자의 항의로 넥슨 측이 일러스트를 수정하고 사과 공지도 올린 터였다. A씨는 "자사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은 것 같다"는 소신을 밝혔고, 얼마 뒤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전국여성노동조합 등 시민단체가 6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공개한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 사례 56건 중 하나다. 단체는 게임업계에 만연한 사상검증 논란이 수년 째 반복되고 있다고 짚었다.
단체에 따르면, 2016년 7월 넥슨에서 게임 '클로저스' 성우를 교체한 사건을 기점으로 사상검증 등을 이유로 일러스트를 교체하거나 제작물을 수정·삭제하는 일이 잇따랐다. 당시 성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메갈리아(급진 페미니스트 온라인 커뮤니티)'를 후원하는 티셔츠 착용 사진을 올렸다가 계약 해지됐다. 시민단체 희망을만드는법의 강미솔 변호사는 "혐오 표현 대응은 기업의 책무이기도 하나, 오히려 부당하게 종사자를 퇴출하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서도 다수가 사상검증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다. 전국여성노조가 지난해 8월부터 4개월 간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페미니즘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가 '작업물 교체 및 고지 없이 무단수정'된 사례는 19건에 달했고, 직장 내 괴롭힘 17건, 채용성차별 및 입사 취소 15건으로 나타났다. 직장 동료와 젠더 이슈를 놓고 토론했다가 대표이사에게 "회사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은 용서 못한다. 다음 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고 통보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단체 측은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동대응위원회(공동대응위)'를 만들어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신고 채널을 운영할 계획이다. 산업안전보건법 41조에 근거해 자사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회사와 정부 활동을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하청업체 노동자나 프리랜서처럼 기존 법망에서 보호받지 못한 취약층을 아우르는 법·제도 개선도 촉구하기로 했다.
김유리 전국여성노조 조직국장은 "기업과 정부의 자정 노력 만으로는 사상검증 사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며 "혐오로 점철된 일터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