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뜻미지근한 정의

입력
2024.03.07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꼬박 10년이 지났는데도 그날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는다. 추석 연휴를 앞둔 2014년 9월 6일. 예비군 군복 차림의 한 젊은 남성이 히죽이며 서울 광화문광장을 어슬렁거리더니 손에 쥔 핫도그를 베어 문다. 사복 차림의 다른 또래들도 주변에 앉아 김밥, 피자, 샌드위치 따위를 먹었다. 극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들이 벌인 ‘폭식투쟁’이다. 당시 광장에는 단식을 하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던 세월호 유족들이 있었다. 법을 만드는 문제를 두고 논쟁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녀를 잃고, 곡기까지 끊어가며 농성하는 이들 앞에서 음식 냄새를 풍기며 조롱하는 극우 청년들의 모습은 패륜을 넘어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당시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노란 테 선글라스를 낀 중년 남성이 피자를 먹던 청년들을 응원하며 이런 말을 건넸다. "여러분 덕에 이 나라가 지켜지는 거예요." 그들은 정말 그렇게 믿는 듯했다. 폭식투쟁은 단순히 '관종'(관심 받으려는 욕구가 병적으로 커진 사람)의 기행으로만 보기 어려웠다. '떼쓰면 다 되는 줄 아는' 유족의 행태를 응징해야 한다는 삐뚤어진 정의감의 표출이었다. 청년들은 그날 그 자리에서 애국가를 함께 불렀다.

10년이 지났다. 돌아보니 폭식 투쟁은 신호탄이었다. 우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정의감 투쟁의 시대를 산다. 각자의 잣대로 불의를 규정하고,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면 과하게 벌하려 하는 일이 빈번하다. 정치도, 사법 시스템도 제 기능을 못하기에 '피 끓는 내가 아니면 정의구현할 사람이 없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어긋난 정의감에 빠진 이들을 보면 자기 확신이 강한 경우가 많다. 지난 1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살해하려 한 60대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이재명이 대통령 되는 것을 막으려 했으며, 사법부 내 종북 세력 탓에 그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아 직접 살해할 결심을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 중독은 정치 테러범처럼 극단주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구에서 3년째 이슬람 사원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자영업자 A씨. 사비를 털어 '이슬람 무서워 밤마실도 못 다닌다'는 등의 혐오표현이 담긴 피켓을 만들 만큼 적극적이다. 하지만 그는 사원이 들어설 대현동에 살지 않고, 직접적인 관련도 없다. 과거 취재 과정에서 그에게 왜 이토록 열심히 하는지 물었더니 "이웃들이 도와달라고 하는데 정의감 때문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답했다.

'정의'라는 명사는 '뜨거운'이라는 형용사와 잘 어울려 쓰인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뜨뜻미지근한 정의'인지 모르겠다. 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이 피해를 봤으니 직접 나서 상대를 혼내줘야 한다는 마음 대신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태도로 상황을 관조하고 자신의 정의감을 객관화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수감자의 직장(항문 쪽 창자)에 물과 음식을 넣는 등 엽기적 고문 사실이 알려져 지탄받은 미군 관타나모 수용소의 고문 가담자 중 상당수도 왜곡된 정의감에 도취됐던 이들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혼자만의 정의감에 취하지 말자는 건 매일 시시비비를 가려 글로 옮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나 스스로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유대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