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유명 인물들은 여러 가지 면모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기억됩니다. 특정한 제스처, 명확한 캐치프레이즈, 그리고 독특한 패션 등이 기억을 하는 데 큰 기준이 됩니다. 특히 패션은 가장 주요한 요소입니다. SNS를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로 쉽게 유명인을 검색하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신문과 텔레비전으로 제스처와 캐치프레이즈가 전달됐지만, 이제는 유튜브와 쇼츠 등으로 패션이 더 많이 소비되고 엄청나게 전달됩니다.
과거부터 패션은 유명 인사의 이미지를 기억시키는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습니다. 하나의 '패션 시그니처'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 이를 통해 자신을 효과적으로 기억시키고 더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가장 많이 활용했지만, 패션과 관련 없는 정치인과 경제인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다음의 세 명이 패션 시그니처 활용에 두각을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애플의 창업자이자 아이폰과 맥북을 만든 고 스티브 잡스. 그는 프레젠테이션에서 늘 똑같은 옷을 입었습니다. 이세이 미야케 검은색 터틀넥, 리바이스 블루데님 팬츠, 그리고 뉴발란스 운동화입니다. 20여 년간 공식 석상에서 늘 같은 아이템을 입는 그의 행위가 일종의 의식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1980년 일본의 소니를 방문했던 잡스는 당시 소니 공장의 직원들이 1981년부터 이세이 미야케가 제작한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바로 강력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었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잡스는 이세이 미야케에게 애플 유니폼 제작을 부탁했습니다만, 애플 임직원들의 반대로 그 혼자만 이세이 미야케가 만든 터틀넥을 리바이스 데님과 뉴발란스 운동화와 입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무려 100벌의 이세이 미야케 터틀넥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애플과 임직원들의 강력한 공동체를 원했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잡스 혼자만이라도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애플 안에서 실행해 온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애플 임직원들이 반대했던 잡스의 패션 공식이 현재 전 세계 저명인사, 특히 IT 업계의 최고경영자의 표준 복장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순자산이 110조 원에 이를 정도로 부와 명예를 가졌습니다. 그런 저커버그가 늘 회색 티셔츠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페이스북 계정에 업로드한 그의 옷장에는 회색 티셔츠가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이는 그의 효율적인 삶의 태도가 드러나 있습니다.
'나는 내 삶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결정은 최소한으로 하려고 한다.'
실제로 저커버그가 했던 이 말은 효율을 중시하는 그의 삶의 태도가 드러나는 문구입니다. 옷을 고르는 시간보다는 더 많은 일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와 삶이기에 그는 회색 티셔츠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이 회색 티셔츠가 저렴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에서 맞춤 제작한 것입니다. 회색 티셔츠 하나에 30만 원꼴입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캐시미어의 제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준 높은 퀄리티의 소재와 안정적인 디자인을 사용하는 고급 브랜드입니다. 효율을 중시하면서도 옷의 퀄리티를 중요하게 판단한 것으로 저커버그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시그니처를 가진 사람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그의 패션 시그니처는 '검은 뿔테 안경'입니다. 검은 뿔테 안경은 무겁고 불편합니다. 아무리 가볍게 하더라도 티타늄 소재 안경보다 무겁고 오랜 시간 착용하면 불편합니다. 그런데도 한 위원장은 다양한 브랜드의 옷과 신발을 바꿔 쓰면서도 검은 뿔테 안경을 고수합니다. 이는 그의 성향을 표현하는 시그니처입니다.
검은 뿔테 안경은 확고한 고집을 나타냅니다. 자신만의 철학이 있음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한 위원장의 그간 성향을 보면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이를 실행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확고한 철학과 고집은 볼드하고 어두운 컬러의 안경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위원장은 패션에서도 취향이 남다릅니다. 여느 정치인들과는 달리, 슬림한 슈트 차림에 다양한 액세서리로 여러 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검은 뿔테 안경도 그 연결 선상에 있는데 티타늄 안경보다 세련되고 젊은 감각을 나타냅니다. 한 위원장의 검은 뿔테 안경은 이제 그의 시그니처가 되어, 그가 언급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대중들에게 자신을 인식시키는 방법 중 하나는 패션 시그니처입니다. 패션 시그니처는 특정 인물의 성향과 업적 여부를 떠나 그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됩니다. 이런 시그니처를 소유한 인물은 더 잘 사람들에게 기억됩니다. 하얀색의 오버사이즈 옷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고 앙드레 김 디자이너, 한복 국회의원으로 유명했던 강기갑 전 국회의원, 도드라지게 빨간 뿔테가 어울리는 이동진 평론가처럼 시그니처 하나로 그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2024년에 우리에게 새로운 시그니처로 기억될 사람은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