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에도 텅빈 병원... 의사 늘린다고 '지방의료원'에 아침 올까요?

입력
2024.03.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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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확대' 파업 대책 제시했으나
지역공공병원은 환자 없어 한산하기만
대형병원 선호 경향 탓 지역병원 외면
"지역필수의료 강화 방안부터 내놔야"

"환자 수요? 평소와 비슷한 것 같네요."

6일 오전 인천 동구 인천의료원 비뇨기과 앞에서 만난 정진교(91)씨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씨에게 전공의 이탈이 초래한 의료 공백 사태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듯했다. 진료를 보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말마따나 오전 10시부터 의료원 1층 접수·수납창구 인근을 몇 시간 관찰해도 상당수 대기의자는 채워지지 않았다. 노년층이 자주 찾는 내과, 신경외과 정도만 잠깐 대기했고, 전공의 집단행동 타격이 가장 크다는 응급실조차 일부 병상이 비어 있는 등 분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의료원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전공의가 많은 편이라 휴직을 한 사람도 꽤 있는데, 원래 환자가 적어 의료 차질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가 이곳을 찾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진료실도, 응급실도 환자 없어

정부는 장기전으로 접어든 전공의 파업 사태 대책 중 하나로 '공공의료 확대'를 제시했다. 하지만 지역 공공의료기관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아무리 의료현장에 비상이 걸려도 정작 환자들이 공공병원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 탓이다. 비상근무 체계 돌입이 무색할 만큼 이들 병원은 파업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의대 증원의 지향점이 필수의료 강화, 특히 ‘지역필수의료’ 살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급박하다면서 환자들은 왜 지역공공병원을 찾지 않는 걸까. 지방의료원 관계자들은 환자 입장에서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은 근본적으로 다른 기관으로 인식된다고 지적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대학병원을 다니던 환자는 더 높은 수준의 진료·치료를 원해 그곳에서 밀려나도 지역공공병원에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윤창규 충주의료원장 역시 "요즘 환자들은 수도권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해 공공병원은 파업 여파가 크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료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 '구원투수'로 톡톡히 활약했으나, 의료체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려움을 겪기는 매한가지다. 정일용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장은 "공공병원의 책무를 고려해 의료 대란이 터지면 연장 진료 등을 하지만, 수익 측면에서 보면 사실 '울며 겨자 먹기' 식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감염병 사태가 잠잠해지자 환자가 확 줄어 적자폭이 계속 커졌고, 의사 급여 지급까지 위태로워졌다고 정 원장은 부연했다. 반면 정부 지원금은 올해 적자 규모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지역거점공공병원 알리미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1,314억 원이었던 전국 지방의료원 적자는 2022년 5,491억 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단순 증원으론 지방의료 못 살려"

공공의료 현장에선 이런 현실을 감안해 의대 증원 등 정부가 내놓은 정책 수준으론 지방의료의 내실을 꾀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의사가 늘면 지방으로 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만 기대다간 의사들을 설득하지도, 정책 실효성을 담보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충청지역 지방의료원에서 일하는 의사 A씨는 "연봉 수억 원을 줘도 지역에는 안 오려 하는데, 늘어난 의대생이 지방의료원에 머무르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지방의료원의 의사 B씨도 "지역가산수가 등 인센티브 부여와 정주 여건 마련 등의 정책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사회에서도 정책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최근 긴급 좌담회에서 "의대 증원에는 찬성한다"면서도 "정부가 추진하는 보건의료 정책은 '의료시장화 정책'으로, (오히려) 필수의료를 더 붕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세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