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 없도록… 프랑스, 헌법에 '낙태 자유' 새긴 유일한 국가

입력
2024.03.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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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양원 4일 투표... 찬성률 91.5% '압도적'
"인권 후퇴 없도록" "프랑스의 자부심" 자축

프랑스가 '임신중지(낙태)'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유일한 국가가 됐다. 프랑스 의회가 4일(현지시간)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는 문구를 헌법 제34조에 추가하는 개헌안을 승인하면서다. 임신중지 합법화에서 나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상위법으로 보장하기로 한 프랑스의 결정은 국경 밖 여권 신장 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압도적 찬성... "프랑스의 자부심"

프랑스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프랑스 상·하원은 이날 파리 외곽 베르사유 궁전에서 합동회의를 열어 '자발적인 임신중지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표결에는 양원 전체 의원 925명 중 902명이 참석했고, 찬성 780표·반대 72표·기권 50표가 나왔다. 양원 합동회의에서 개헌안이 통과되려면 유효표(852표) 중 5분의 3 이상의 찬성표(512표·찬성률 60%)가 나와야 하는데 이를 훌쩍 뛰어넘은 91.5%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이번 개헌을 통해 실질적으로 바뀌는 조치는 없다. 프랑스는 1975년 임신중지를 일찌감치 합법화한 이후 여러 차례 법 개정을 통해 그 허용 범위를 이미 꾸준히 넓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에 임신중지 자유를 명문화함으로써 프랑스 여성은 임신중지 자유를 최상위법으로 보장받게 됐음은 물론,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라 임신중지 자유가 제한·축소될 위험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게 됐다. 프랑스의 개헌 추진은 2022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약 24주까지 임신중지를 허용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1973년)'을 폐기한 것이 계기가 됐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표결 전 연설을 통해 "여성의 권리는 언제나 가장 먼저 위협을 받는다. 개헌은 반동주의자들이 여성을 공격하는 것을 방지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표결 결과가 발표된 직후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쳤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현장에 참석하지 않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프랑스의 자부심"이라고 썼다. "세계 여성의 날인 이달 8일 헌법 국새 날인식을 열어 '새로운 자유'로의 진입을 축하하겠다"고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개헌을 주도했다.


프랑스 바깥 여권 신장 운동에도 영향

프랑스 시민들은 개헌을 환영했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는 개헌 지지 시위가 열렸고, 파리시는 이에 맞춰 광장 앞 에펠탑에 '나의 몸, 나의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달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66%가 임신중지의 헌법 명문화에 찬성했다. 다만 베르사유 궁전 앞에서는 개헌 반대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프랑스의 결정은 전 세계 여권 신장 운동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임신중지 권리 및 자유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주요 쟁점 중 하나라는 점에서 파장은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스테판 세주르네 프랑스 외교부 장관은 "'유럽연합(EU) 기본권 헌장'에도 (임신중지 자유 관련 내용이) 명시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한국에서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 후 국회에 보완 입법을 주문했지만, 판결 후 5년 가까이 지나도록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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