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자 최저임금 삭감, 외국인력 도입"... 한은의 논쟁적 제안

입력
2024.03.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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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년 돌봄노동자 155만 명 부족
가족 간병으로 GDP 손실 최대 3.6%
임금 낮추고, 외국인 인력 유입해야"
"처우 개선이 우선" 노동계 반발

저출생·고령화로 돌봄노동자 공급 부족 및 비용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한국은행 진단이 나왔다. 한은은 "외국인 노동자를 공급하고, 돌봄노동자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최저임금을 책정하자"는 논쟁적인 제안을 내놨다.

채민석 한은 조사국 과장은 5일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 노동시장 세미나'에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팬데믹 이후 빠르게 악화하고 있는 돌봄서비스 인력난이 향후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대안을 탐색하자는 취지다.

그는 돌봄노동자 공급 부족 규모는 2022년 19만 명에서 2042년 61만~155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2042년 돌봄노동 공급이 수요의 30%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면 서비스의 고충, 유연 근무 불가, 낮은 임금 등으로 돌봄서비스가 '3D직군'으로 불리며 수요·공급의 '미스매치(불일치)'가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현재도 돌봄서비스직 빈 일자리가 한 달 내 채워질 확률은 50% 이하로, 요양원 정원 축소를 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공급 부족이 가계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간병인 고용비는 지난해 기준 월평균 370만 원으로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224만 원)을 1.7배 웃돈다. 월평균 가사·육아도우미 비용 264만 원(하루 10시간 이상 고용)은 30대 가구 중위소득(509만 원)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채 과장은 △양질의 시설요양을 받을 기회가 축소되고 있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억지로 요양원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여성 경제활동 제약 △저출생 등을 돌봄 인력난 및 비용 부담으로 생긴 문제라고 짚었다.

특히 간병비에 대해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간병이 더 필요한 경우가 많아, 저소득 계층의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 간병을 택하는 인구도 2022년 89만 명, 2042년 212만~355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생산인구 감소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은 2042년 최대 77조 원으로 추산된다. 국내총생산(GDP)에 3.6%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외국인 노동자 도입, 돌봄인력 임금 낮춰야"


돌봄 공백을 메우려면 "외국인 노동자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현재 돌봄인력의 83%가 50세 이상으로 젊은 층의 선호가 낮기 때문이다. 처우 개선으로 청년, 고학력 노동자가 유입된다고 해도 "노동 공급 증가세(2032년 22만 명, 2042년 32만 명 증가)는 수요에 비해 더디고, 수요자 비용 부담을 증가시킬 것"으로 봤다. "저생산성 부문에 내국인 노동력이 몰리는 것은 자원 배분 측면에서 효율적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채 과장은 저소득층 돌봄 부담이 문제로 지적된 만큼 임금에 대한 고민도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①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지 않는 사적 계약으로 개별 가구가 외국인을 직접 고용하거나 ②외국인고용허가제 대상에 돌봄서비스업을 추가하되, 내·외국인 돌봄서비스직종은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하는 안을 제안했다.

그는 "돌봄서비스의 인력난과 비용 부담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차등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돌봄서비스가 타 산업 대비 생산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중장기적으로 가격 왜곡을 줄이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낮은 임금으론 서비스 질 담보 못 해"

하지만 낮은 임금을 책정하는 것은 ①돌봄서비스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권정현 KDI 연구원은 "값싼 노동력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질적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 이미 많은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돌봄노동자가 공급되고 있다며 "후발 주자로서 낮은 임금으로 충분한 인력 확보가 가능한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첨언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는 "최저임금을 그대로 지급하되 정부가 가계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금을 주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장기요양보험, 아이돌봄서비스로 외국인 돌봄노동자 고용이 가능한지' 등 ②기존 정부 지원과 유기적 결합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③내국인 노동자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권 연구원은 "내국인은 프리미엄 서비스로 이동하기보다 시장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외국인 도우미는 전일제, 내국인은 비싼 보수를 받되 시간제'로 일하는 홍콩 모델이 내국인 보호 방안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부 지원 해결책 아냐" vs. "처우 개선부터"

이날 한은 발표는 장외 설전으로 번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토론 내용에 대해 즉각 반론을 펴 주목받았다. 그는 "부작용을 강조하다 보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공적인 것은 거저 오는 게 아니다. 공적으로 투입되는 돈을 계산하면 그것이 솔루션(해결책)인지 잘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에 노동계는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한은 제안을 "시장 논리만 따른 임시방편식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돌봄노동자의 역할과 비중이 결코 작지 않음을 고려하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입과 예산 편성으로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돌봄종사자 임금의 절반(48.4%)은 최저임금의 120%에 못 미치는(2022년 기준) 열악한 수준인데, 중앙은행이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처우를 더 악화시키는 대안을 제시해 반발이 거센 것으로 풀이된다.

윤주영 기자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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