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못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사실상 하나밖에 없다. 살고 있는 집을 강제로 경매로 넘겨 경매 낙찰금에서 전세금을 배당받는 것이다. 물론 전제가 있다.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 대항력을 갖춘 상태에서 법원에 전세금반환소송을 건 뒤 승소해야 강제경매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강제경매에서 일단 낙찰만 되면 세입자는 전세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 가령 낙찰자가 감정가 이하로 낙찰받아도 해당 주택을 인수하려면 선순위 세입자가 신청한 배당금(전세금)을 모두 채워줘야 한다. 문제는 이 방법이 예상치도 못한 데서 막힐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전세사기 조직이 설정한 '가등기'다.
가등기는 둘로 구분된다.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와 담보가등기다. 전자는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매도인의 이중 매매를 막으려고 등기상 순위를 보전하기 위해 설정하는 것이고, 후자는 돈을 빌려준 이가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건 전자다. 전세사기 조직은 전세금으로 집값을 치르는 무자본 갭투자를 한 뒤 바지집주인을 들이는데, 이들이 집을 팔지 못하게 하려고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세입자가 입주한 뒤에 이뤄지다 보니 세입자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매시장에서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가 걸려 있으면 낙찰 가능성이 희박하다. 낙찰받아도 가등기권자가 본등기를 한 순간 소유권이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의 순위 보전 효력 때문이다. 세입자의 확정일자가 가등기 시점을 앞섰더라도 가등기를 소멸시킬 수 없다. 반면 담보가등기는 낙찰금에서 가등기권자가 신청한 배당금이 지급되면 동시에 소멸되는 구조라 경매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다 보니 법원이 제공하는 문건처리내역엔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가 걸린 주택에 대해 '경매 때 상당히 유의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달려 있다.
이처럼 세입자가 전입 후 확정일자까지 받았는데도 갑작스레 설정된 가등기에 따른 피해를 막으려면 전세권을 미리 설정하는 게 방법이다. 전세권은 임차권과 달리 등기부상 권리라 가등기보다 미리 설정만 하면 후에 설정된 가등기는 경매 때 자동 말소된다.
또 전세금을 못 받았을 때 법원 소송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임의경매로 넘길 수 있다. 다만 전세권은 집주인 동의와 비용이 든다. 보증금의 0.24% 수준으로 가령 4억 원짜리 주택에 전세권을 건다면 100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 전세금반환보증 가입이 어려운 경우엔 전세권을 설정하는 게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