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민들이 2026년부터 연금을 연 13회 받게 된다. 3일(현지시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10명 중 6명이 연금 지급 횟수를 연 12회에서 1회 더 늘리는 법안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스위스가 1848년 국민투표를 법제화한 이래 국민투표를 통해 연금 인상이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물가 여파로 민심이 '더 많은 복지' 쪽으로 기울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스위스 타게스안차이거 등에 따르면 '연금 지급 횟수를 연 1회 늘려 연금 지급 총액을 연 8.3% 인상하자'는 내용의 법안에 대해 전날 이뤄진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58.2%가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는 41.8%가 나왔다. 이에 따라 스위스 국민은 2026년부터 개인당 월 최대 2,450프랑(약 369만 원)씩 받던 연금을 1번 더 받게 된다.
사회민주당 등이 발의한 해당 법안을 제안한 건 스위스노동조합연맹(이하 노조연맹)이다. 그간 노조연맹은 '더 나은 노년의 삶' 등을 슬로건으로 연금 인상 캠페인을 벌여왔다. 피에르 이브 마이야르 노조연맹 회장은 국민투표 결과 확인 후 "평생 일해 온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며 "스위스 국민이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스위스의 민주주의가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간 스위스 노조 등이 연금 인상을 위해 국민투표를 주도한 전례가 없지는 않았으나, 재정 부담 상승을 꺼리는 여론이 많아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많은 국민이 연금을 인상하자는 쪽에 서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시·국가별 생활비 지수를 추적하는 넘베오에 따르면, 스위스 취리히를 기준으로 시내 원룸 월세는 평균 2,392프랑(약 360만 원), 저렴한 식당에서의 한 끼 식사는 25프랑(3만7,700원)에 달한다. 독일 타게스샤우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스위스 국민은 비슷한 연금 인상 계획을 단호하게 거부했지만 에너지, 주택, 식품 가격 상승 압력을 받게 됐다"고 평가했다. 고령화로 인해 노후 불안이 커진 점도 연금 인상 찬성의 배경으로 꼽힌다. 국민투표 참여율도 58.3%로 높은 축에 속했다.
스위스 정부는 연금 인상을 위해 추가로 조달해야 하는 재원이 연 40억 프랑(약 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에 부가가치세 등 세금이 인상될 전망이다. 중도우파 자유민주당의 크리스티안 바서폴렌은 연금 인상이 청년 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면서 "오늘(3일)은 젊은 세대에게 암울한 날"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민투표에는 '은퇴 연령을 65세에서 66세로 상향 조정하자'는 내용의 법안도 올라왔으나 찬성 25.3%, 반대 74.7%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