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최고 베이스' 연광철이 "나는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

입력
2024.03.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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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무대가 유럽·미국인 성실한 한 명의 성악가일 뿐"
17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듀오 공연 '시인의 사랑'
"가곡은 피아노 한 대와 연주할 때 표현력 높아져"

성악가에겐 오페라가 꿈의 무대이지만 가곡 가창은 또 다른 의미에서 큰 도전이다. 2~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곡의 개성과 가사가 주는 묘미를 밀도 있게 전하기란 쉽지 않다. '바그너 전문 가수'로 명성이 높은 베이스 연광철(59)에게도 가곡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서야 많은 관심을 갖게 된 장르다.

연광철은 지난해 말 한국 가곡 독창회를 한 데 이어 이달 17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가곡 분야의 업적이 두드러진 로베르트 슈만을 조명하는 공연을 연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의 듀오 공연 '시인의 사랑'이다. 두 사람은 250여 편에 이르는 슈만의 가곡 중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16편에 음악을 붙인 '시인의 사랑' '내 고뇌의 아름다운 요람' '나의 장미' '헌정'과 피아노곡 '다비드 동맹 무곡'을 들려준다.

선우예권과는 2022년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나그네' 연주회를 함께 한 것을 계기로 다시 손을 잡았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연광철은 "가곡은 오케스트라보다 성악가와 피아니스트가 일대일로 만날 때 표현의 폭이 넓어진다"며 "전문 성악 반주자보다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팬텀싱어'가 성악가 목표 되면 안 돼"

연광철은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바그너의 성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150회 이상 공연했고,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10년간 전속가수로 활동했다. 2018년엔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캄머쟁어(궁정가수)' 칭호도 받았다. '세계 최정상 베이스' '바이로이트가 사랑한 성악가' 등의 수식이 붙는 독보적 경력의 소유자이지만, "나는 특별하지 않다. 유럽과 미국 무대에서 성실히 활동하며 살아가는 성악가 중 한 명일 뿐"이라고 했다.

연광철은 청주대 음악교육과를 졸업하고 1990년 불가리아 소피아음대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활동할 꿈조차 꾸지 않았다.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것은 궁금증과 호기심이었다. 노래 테크닉보다 서양사와 문화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컸기에 현지 언어와 문화에 파묻혀 사는 고된 생활이 힘겹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음성으로 노래해서는 서양 관객과 동료 성악가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성악가는 언어와 문화를 전달하고 문화 작업을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렵고 고단한 성악가로서의 길을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연광철은 지름길을 찾아 '팬텀싱어' 같은 TV 경연 프로그램 등으로 눈을 돌리는 후배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경연 프로그램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를 모든 성악하는 사람의 목표로 여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뛰어난 선배 음악가들이 있었기에 경연 프로그램에서 보는 변형된 음악 장르도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최근 몇 년간은 국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지만 올해는 세계 곳곳의 러브콜을 받아 해외 활동에 적극 나선다. 지난달엔 미국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에서 바그너의 '파르지팔'에 출연했고, 선우예권과의 듀오 공연 이후엔 독일 바덴바덴에서 베를린필하모닉과 함께 무대에 선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마술피리'에 출연하고 겨울에는 파리로 간다. 그 사이 귀국 일정은 독창회가 예정돼 있는 7월이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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