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야당 복'

입력
2024.03.04 16:3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요즘 정치권 안팎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 복도 참 많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내홍에 따른 반사이익을 윤 대통령이 얻고 있다는 얘기다. 신년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정권심판론에 기반한 총선 판세가 확 뒤집혔다. 한때 '총선 200석'을 얘기하던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여당 승리를 점치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 4년 전 총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복을 누렸다. 2019년 '조국 사태'로 정부·여당(민주당)에 등을 돌린 중도층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황교안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좌파폭정을 막기 위한 구국투쟁'을 외치며 장외투쟁을 전개했다. 강경 일변도의 대여투쟁은 중도층 흡수는커녕 보수층에게도 외면받았다. 오죽하면 박지원 전 의원이 "문 대통령은 확실한 야당 복이 있는데, 그것도 천복"이라고 했겠나. 코로나19 변수까지 겹치며 여당 압승, '보수 괴멸' 수준의 야당 참패로 끝났다.

□ 일본 정치에서도 야당 복을 찾아볼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 지지율은 지난주 25%(니혼게이자이신문 기준)로 정권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집권여당인 자민당 유력 파벌들의 비자금 스캔들 등으로 당 지지율도 25%까지 떨어졌다. 자민당이 집권 54년 만에 민주당에 정권을 내줘야 했던 2009년 아소 다로 내각 때보다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자민당과 다수 일본 국민 사이에선 정권 교체에 대한 위기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지지율이 9%에 불과한 탓이다.

□ 대통령과 여당의 야당 복은 국민 전체의 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야당은 정부·여당을 나태하게 만들고, 정부·여당은 견제 세력 부재로 인해 오만과 독선에 빠지기 쉽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한 사과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 정책은 감감무소식인 가운데 윤 대통령 지지율은 2월 한 달 동안 10%포인트(한국갤럽 발표 기준) 상승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효과라고 하지만, 장기화하는 의정 갈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김회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