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근시라면 실명 부르는 ‘녹내장’ 위험… 40대부터 1년에 한 번 검사를

입력
2024.03.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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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최고] ‘급성 폐쇄각 녹내장’, 두통·구역감 동반해 뇌 질환으로 착각

녹내장(綠內障·glaucoma)은 눈 시신경이 손상되면서 시야가 점점 줄어드는 질환으로, 당뇨병성망막증·황반변성과 함께 3대 실명 질환으로 꼽힌다. 스스로 알아채기 힘들어 정기검진으로 조기 발견해 치료하지 않으면 자칫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녹내장을 ‘소리 없는 시력 도둑’이라고 부른다.

세계녹내장협회(WGA)와 세계녹내장환자협회(WGPA)는 녹내장 질환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매년 3월 둘째 주를 ‘세계 녹내장 주간’으로 정했다.

김찬윤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한국녹내장학회 회장)는 “60세 이상이 녹내장 환자의 50% 정도를 차지하지만 최근 40대에서도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어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40세가 넘으면 녹내장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40대 미만 녹내장 환자가 2012년 11만4,000명에서 2021년 13만7,00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따라서 40대가 아니더라도 당뇨병·고혈압 같은 만성질환, 고도 근시, 녹내장 가족력, 6개월 이상 스테로이드제 사용 등 고위험 요인이 있다면 매년 1회 정도 정기검진으로 녹내장 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녹내장은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말기 녹내장 단계가 돼서야 대부분 발견한다. 이 때문에 정기검진으로 되도록 빨리 진단해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서서히 시력을 떨어뜨려 심하면 실명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혈압ㆍ심혈관 질환 등 기저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서 발병률이 높은 편이다.

녹내장은 눈의 둥근 형태를 유지하는 ‘방수(房水)’라는 액체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서 눈의 압력, 즉 안압이 높아지는 것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안압이 상승하면 눈은 공기를 빵빵하게 넣은 타이어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시신경을 훼손한다.

하지만 안압이 높다고 해서 녹내장이 되는 건 아니다. 정상 안압이라고 해도 시신경 유두가 물리적 압박을 받거나, 혈류장애 등으로 시신경이 손상돼 녹내장이 생길 때도 많다(정상 안압 녹내장). 우리나라에서는 정상 안압 녹내장이 전체 녹내장 환자의 70% 이상이다.

강자헌 강동경희대병원 안과 교수는 “정상 안압 녹내장의 시야 손상은 생각보다도 서서히 진행되므로 환자 스스로 증상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며 “심지어 시신경이 80~90% 손상돼도 증상을 모르는 환자도 있다”고 했다.

녹내장 가운데 방수 유출로가 완전히 막히는 ‘폐쇄각 녹내장’이라면 시력이 급격히 손실될 수 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면서 구토를 동반하거나 눈 주위 통증과 충혈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럴 때 72시간 이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시신경이 손상돼 실명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김용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중년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급성 폐쇄각 녹내장은 흔히 두통과 구역감을 동반해 뇌 질환으로 착각하기 쉽다”고 했다.

녹내장은 종류에 따라 치료법도 다르다. 정상 안압 녹내장이라면 안압이 정상이라도 이를 조절해 시신경에 가해지는 압력을 더 줄여서 시신경이 더 이상 손상되는 걸 막아야 한다. 약물로 안압을 조절하는 게 힘들다면 방수 유출로(섬유주)를 수술하는 ‘레이저 섬유주 성형술’이나 ‘섬유주 절제술’을 시행한다.

폐쇄각 녹내장은 빠른 치료로 안압을 떨어뜨려 시신경을 보존하는 게 관건이다. 안압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정맥주사와 함께 안약을 사용하며, 안압이 내려가면 ‘레이저 홍채 절개술’ 등으로 방수가 배출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다.

녹내장은 별다른 예방법이 없다. 정기검진으로 녹내장을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책이다. 또 계단을 헛디디거나 자주 넘어지고, 낮은 문턱에 머리를 부딪히거나 운전 중 표지판과 신호등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녹내장을 의심하고 안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게 바람직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