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이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하면서 증권사 점유율 경쟁도 치열하다. 상품 선정 강화, 전담 부서 확충으로 기본을 탄탄히 다지는 동시에 서비스 차별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지난달 13일 낸 '퇴직연금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액은 총 382조 원으로 추산된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퇴직연금 시장은 연평균 9.4% 성장을 거듭해 10년 후엔 940조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비교공시를 분석하면, 지난해 말 증권사 퇴직연금 점유율은 23%로 은행(52%)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확정기여형(DC) 고객을 공격적으로 늘려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지난해 DC형 적립금 증가율은 증권 31%, 은행과 보험이 각각 16%였다.
증권사 중 퇴직연금 강자는 미래에셋이다. 지난해 말 적립액(23조7,473억 원)은 전체 증권사 4분의 1(27.4%)을 차지한다. 외부 전문위원을 포함한 고객자산배분위원회가 자산배분전략을, 상품선정위원회가 상품 선정을 맡도록 체계화했다. 미래에셋이 보유한 확정급여형(DB) 상품은 1,669개, DC는 1,660개에 달한다. 연금 전담 인력도 업계 최대인 256명이다.
다른 증권사도 전담 조직을 보강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법인고객 확보를 위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전담 부서를 3개로 확대하고 독립 사업본부로 위상을 강화했다. 현대차증권은 DC 부문 강화에 중점을 두고 올해 전담 조직을 신설했고, DC 가입자 수익률 제고를 위해 온라인 청약·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상품 라인업 차별화도 꾀한다. 대신증권은 성과가 부진한 펀드는 라인업에서 과감히 퇴출하고, 부동산 대체투자상품을 집중 운용해 DB형 고객의 실질수익률을 최대 3.98%로 높였다. 하이투자증권은 고금리 기조를 감안해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적극적으로 교체매매(리밸런싱)하는 전략으로, 안정성을 추구하는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KB증권은 2022년 말부터 퇴직연금용 채권을 판매하는데, 현금흐름을 확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채권이 노후 자금 운용에 적합한 자산이라는 설명이다. NH투자증권은 채권 및 퇴직연금 전용 주가연계증권(ELS)에 집중하고, 한국투자증권은 개인형퇴직연금(IRP)에서 거래가능한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 리츠를 업계 최다 수준으로 늘렸다.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상품 개발도 한창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호주 퇴직연금제도를 벤치마킹해 장기 물가상승률 추정치보다 수익률 높은 포트폴리오로 최적화하는 '한국투자마이슈퍼알아서펀드'를 단독 판매한다. 신한투자증권 BF 포트폴리오에는 신한자산운용 등 그룹 역량을 총결집한 디폴트옵션 전용 펀드가 포함돼 있다.
고객 니즈(needs·요구)를 십분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도 기본이다. 신영증권은 지난해 '신영 C-레벨 퇴직맞춤 서비스'를 출시,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에 특화한 자산운용 서비스를 선보였다. 삼성증권은 업계 최초로 서울, 수원, 대구 등 전국 3곳에 연금센터를 신설, 오직 연금 가입자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하나증권은 올해 법인 현장 자문단, IRP 교육 전담 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주요 법인에 직접 방문해 퇴직연금 활용방안과 세무 서비스를 제공하고, IRP 비대면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로보어드바이저(RA)도 '증권사 퇴직연금 대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RA는 고도화한 알고리즘으로 시장 데이터를 분석해 자산 배분 전략을 짜는 서비스다. 올해 6월 퇴직연금 일임형 RA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될 예정이라 개발 경쟁에 속도가 붙고 있다. NH투자증권은 RA 전문업체 콴텍 및 자체 알고리즘 전략을 활용한 서비스를 준비 중이고, 신한투자증권은 자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한편, 국내 RA 업체 2곳과 제휴 추진 중이다.
이미 서비스 중인 곳도 있다. 미래에셋은 글로벌 자산배분 포트폴리오 제안을 주기적으로 제공하고, 고객이 제안을 승인하면 증권사가 상품을 알아서 매매해 주는 'MP(미래에셋포트폴리오) 구독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한국투자는 자체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코비(KORBY)'를 퇴직연금 전용 애플리케이션(앱) 'my연금'에 탑재했다. 한화투자증권은 포항공대와 협업해 노후 자산 계획을 짤 수 있는 '미래설계NOW' 서비스를 2019년 출시했다.
고객 실질 수익률 상승을 위해 수수료 '0' 정책을 시행하는 곳도 있다. 40여 개 자산운용사, 한국증권금융, 예탁결제원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한국포스증권의 'S클래스펀드'는 판매보수가 오프라인 3분의 1, 온라인의 2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 IRP 운용 및 자산관리 수수료도 전액 면제한다.
신한투자증권은 비대면 계좌 개설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대면·비대면 구분 없이, KB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은 모든 IRP 고객에, 대신증권은 펀드 보유 고객에 운용 및 자산관리 수수료를 면제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2021년 국내 최초 퇴직금 보관수수료 무료 서비스 '다이렉트 IRP'를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