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 노지 걸로 줍써" 제주 애주가들은 다 아는 이 말

입력
2024.03.04 04:30
11면
<20> 한라산소주 제조 기업 제주 '한라산'
화산암반수 ‘맛’ 차별화, 세계 3대 주류품평회 석권
국내서도 전국구 인기… 미국 등 세계 20개국 수출

편집자주

지역경제 활성화는 뿌리기업의 도약에서 시작됩니다. 수도권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고군분투하는 전국의 뿌리기업 얘기들을 전합니다.

“하얀 거 노지 걸로 줍써.”

제주 지역의 애주가들이 식당에서 소주를 주문할 때 하는 말이다. 풀어 해석한다면 “냉장고가 아닌 실온에 보관 중인 한라산소주(알코올 도수 21도) 주세요”라는 뜻이다. 술을 마실 줄 아는 제주도민들은 누구나 이해하지만,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에겐 마치 ‘암호문’처럼 들릴 것이다. 이 같은 주문이 일상에서 통한다는 건 70여 년간 제주도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제주지역 대표 소주인 ‘한라산소주’의 매력 덕분이다. 40, 50대 도민들이 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제주시내 식당가에는 한라산소주 외에 다른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도민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4대째 내려오는 대표 향토기업

한라산소주를 생산하는 주식회사 ‘한라산’은 4대째 내려오는 제주의 대표 향토기업이다. 지난달 29일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제조공장에서 만난 현재웅(48) 대표이사는 “한라산소주는 90년대 제주 소주시장의 90%까지 차지했었지만, 지금은 대기업의 물량공세 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장점유율은 많이 떨어진 상태”라며 “하지만 위기를 기회 삼아 제주를 넘어 대한민국의 대표 소주가 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한라산소주는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2012년 영국 런던 국제주류품평회(IWSC), 201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SWSC), 2017년 벨기에 몽드셀렉션(MONDE SELECTION) 등에서 금상, 은상을 수상해 세계 3대 주류품평회를 석권했다. 세계적 명주 반열에 오르게 된 건 제주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현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 모든 소주 제조업체들은 동일한 소주의 원료인 주정(알코올)을 사용하기 때문에 결국 소주의 맛은 주정을 희석하는 약 80% 상당의 물맛에 좌우된다”며 “한라산소주에 들어가는 지하수는 일반적인 지하수가 아닌 지하 65m 아래 암반지대에서 뽑아 올린 자연 여과된 화산암반수로, 다른 소주의 물과 비교해 품질 등에서 확실하게 다르다”고 자신했다. 이어 “화산암반수 외에도 제주산 밭벼와 보리로 만든 증류원액을 사용하고, 한라산 800m 고지에서 자생하는 조릿대로 만든 숯으로 정제 과정을 거치는 등 청정 제주의 자연 자원이 한라산소주 한 병에 모두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한라산이 현재 생산 중인 제품은 저도주인 한라산 순한소주(16도), 국내 소주 중 가장 ‘독하다’는 한라산오리지널(21도), 전통주인 증류주 허벅술(35도)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신제품인 저도주 증류주 ‘한라산 1950'(25도)을 출시, 증류주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한라산의 창립 연도(1950년)와 제주의 정상인 ‘한라산 높이 1950m’라는 뜻을 담았다.

국내에도 마니아층 형성

국내에서도 한라산소주의 ‘맛’은 제주를 넘어 전국구로 인정받는다. 제주를 찾았던 관광객들은 한라산소주에 빠져 돌아갈 때 챙겨가기 바쁘고, 서울 백화점이나 유명 음식점에서도 다른 소주들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주저 없이 구입하는 등 확실한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한라산은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시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에 편중됐던 수출 물량이 최근 다변화된 것이 반갑다. 현재 미국 수출 물량이 가장 많고, 신규 시장으로 동남아시아도 떠오르면서 수출 국가는 20개국에 이른다. 시장이 넓어지면서 매출도 증가 추세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여파 등으로 200억 원 아래로 떨어졌던 매출액은 2021년 다시 200억 원대로 진입한 뒤 2022년 246억 원, 지난해 221억 원으로 회복세가 뚜렷하다.

현 대표는 “최대 소비층으로 부상한 이른바 ‘MZ세대’를 잡기 위해 신제품 개발에 나서는 등 한국 대표 소주로 성장하기 위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갈 것”이라며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매년 당기순이익의 30%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 도민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제주= 김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