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인류학자? 뼈를 통해 이름 되찾는 사람"

입력
2024.03.01 15:30
10면
진주현 '발굴하는 직업'


"내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유해와 어디선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 그리고 나는 우주의 인연으로 맺어진 게 분명하다."
-책 '발굴하는 직업' 중

미국에서 일하는 한국계 공무원의 일상을 엿보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기관(DPAA)에서 근무하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제2차 세계대전 때 신원 미상이 된 유해를 발굴하는 일을 하는 '뼈 전문가'라면 더더욱. 미국 국방부에서 한국전쟁 프로젝트팀을 이끄는 법의인류학자 진주현은 특별한 직업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책 '발굴하는 직업'에 담았다. 출판사 마음산책 '직업 이야기'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다.

법의인류학자는 백골이 된 사체의 신원을 밝혀내는 사람이다. 대규모 사고, 테러, 전쟁으로 시신이 훼손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체의 뼈를 감식해 키와 나이, 인종, 사망원인을 밝히고 사연을 알아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임무다. 15년째 법의인류학 현장에서 일하는 저자는 유물 발굴 현장에서 고고학자가 붓을 들고 흙을 쓸어내듯 사람 뼈를 찾고 말 없는 뼈의 이름을 묵묵히 찾아온 그간 일화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직업 에세이지만 법의인류학자에 대한 정보만 백과사전처럼 늘어놓지는 않는다. 직업인으로서의 소명뿐 아니라 백인 남성이 주류인 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으로서의 어려움,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서의 애환도 고루 담았다.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군사적, 정치적 이슈를 조율하는 고충, 오랜 타지 생활로 인한 문화적 갈등, 미국으로 입양된 남편의 아내로서의 소회 등 삶과 치열하게 부딪치며 경험한 모든 시간이 직업적 정체성의 저변에 흐른다.


손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