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삼성생명 부동산 뒷거래 의혹' 아난티 대표 재소환

입력
2024.03.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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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잠실 부동산 500억 구매
매입 두 달 만에 2배 값에 되팔아
차익 일부 뒷돈으로 준 정황까지

국내 호텔업계 최초로 연 매출 1조 원을 노리는 아난티. 호텔·리조트 업계의 신흥강자로 떠오른 이 회사가 삼성생명과 체결한 부동산 거래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근 아난티 대표와 거래 중개인(브로커) 등 핵심 인물을 잇달아 조사했다. 검찰은 조만간 이들의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용성진)는 지난달 말 이만규(54) 아난티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지난해 4월 이후 10개월여 만에 소환이다.

검찰은 이 대표를 상대로 과거 삼성생명과의 잠실 부동산 거래 경위·과정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삼성생명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 배임) 등으로 이 거래를 주선한 자산운용사 대표 황모씨도 이 대표보다 먼저 불러 조사했다. 황씨는 과거 삼성생명 부동산사업부에서 15년간 근무한 인물이다.

사건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아난티는 500억 원을 들여 서울 송파구 일대 토지를 사들였다. 같은 해 6월엔 삼성생명과 '준공조건부 판매 계약'을 맺었다. 지상 17층·지하 7층 규모로 개발 예정인 부동산의 소유권을 준공 전인 2010년까지 약 970억 원에 삼성생명에 넘기는 내용이었다. 두 회사는 아난티가 토지주에게 잔금을 모두 치르기도 전에 계약을 맺었고, 아난티는 이 거래로 400여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 건물은 2011년 준공 이후 삼성생명이 잠실사옥으로 사용 중이다.

검찰은 당시 삼성생명 전·현직 임직원이 부동산을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여, 회사에 수백억 원 규모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의심한다. 또 아난티가 해당 거래의 수익 일부를 횡령해 뒷돈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황씨가 수억 원대 금품을 받은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아난티가 금융기관에서 부지 매입용 자금을 대출받는 과정에서부터 "삼성이 토지를 매입하기로 돼 있다"는 증빙서를 제시한 점 등을 근거로, 양측이 거래 이전부터 유착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수사는 2019년 금융감독원이 아난티의 허위 공시 정황을 검찰에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해 2월 아난티와 삼성생명 등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그해 상반기까지 두 회사의 전·현직 경영진뿐 아니라,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를 포함한 당시 투자심사위원 9명 전원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마쳤다. 모든 심사위원이 부실검증 의혹을 부인했고, 황씨와 당시 부동산사업부장이던 이모씨가 짜고 허위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은 "브로커 농간에 속아 약 200억 원대 손해를 봤다"는 의견서를 검찰에 냈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전직 아난티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 대표의 친동생(이홍규)만 먼저 재판에 넘겼다. 당시 공소시효가 임박한 허위공시 혐의(외부감사법·자본시장법 위반)만 적용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첫 재판에서 이 전 CFO 측은 "공소장에 공범으로 적시된 이 대표가 아직 기소되지 않았다"며 재판 연기를 요청했다. 검찰도 올해 1월 초 예정됐던 2차 공판 전날에 돌연 기일 연기를 신청해 1년째 재판이 공전 중이다.

수사팀은 지난해 상반기 사건의 사실관계 파악을 마쳤지만, 주요 피의자들의 엇갈리는 진술 탓에 사건 처리 방향을 결론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에 대한 대질조사도 시도했지만, 당사자들의 거부로 불발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당시 거래의 '큰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사업부장 출신 이씨도 조만간 불러 조사한 뒤, 이들의 인적 책임 범위를 확정짓고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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