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최대 규모의 주방·욕실 전시회 'KBIS(The Kitchen & Bath Industry Show) 2024'가 개막한 2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다수의 방송 출연으로 유명한 한국계 미국인 셰프 오스틴 강이 LG전자 전시장에 마련된 부엌에 들어섰다. 요리사 복장을 한 그는 "촉촉한 로스트치킨을 만들어 보겠다"며 잘 손질된 생닭을 오븐에 넣고 문을 닫았다.
오븐은 방금 들어온 식재료가 '닭'이라는 사실을 바로 인식했다. 인공지능(AI)이 내부 카메라를 이용해 파악한 것이다. 이어 오븐 바깥에 달린 작은 LCD 화면에 추천 메뉴가 표시됐고, 오스틴 강이 '통닭'을 눌러 주문하자 조리 시간·온도가 자동으로 설정됐다. 그는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오븐을 이용하면 요리 경험이 더 쉬울 뿐 아니라 흥미로워진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바로 옆의 제너럴일렉트릭(GE) 전시장에서도 비슷한 시연이 진행됐다. GE 관계자가 쿠키 반죽이 올려진 쟁반을 오븐에 넣자, 외부 LCD 화면에 "쿠키를 구우시겠습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나중에', '쿠키 모드 실행'이라는 두 개의 버튼이 떴다. 이 관계자는 "1분기 중 출시될 신제품"이라며 "지금은 10개 정도의 식재료만 인식하지만, 시판 무렵에는 수백 개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KBIS 현장에선 요리 초보도 능숙하게 쿠키를 굽고, 고급 닭요리를 할 수 있게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테크업계를 휩쓸고 있는 '메가 트렌드' AI가 오븐·냉장고· 식기세척기 같은 주방가전에도 결합되고 있어서다.
올해로 60회째인 KBIS는 일반 소비자보다는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건축업계 전문가들을 위한 행사다. 한 달여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보다 규모나 인지도는 떨어져도, 가전 업체들에는 CES 못지않게 중요한 이벤트로 꼽힌다. 원래 가전·TV가 주인공이었던 CES의 전시 성격이 모빌리티·로봇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CES에 참여하지 않았던 미국 최대 가전사 GE와 월풀도 이번 KBIS엔 대형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가전 최신 동향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무대인 셈이다.
총 500여 개 참가사 가운데 개막 첫날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건 LG전자와 GE였다. 각각 세계 시장과 미국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두 회사는 참가 업체들 중 최대 규모의 부스를 입구 바로 앞에 나란히 차리고, AI 기능이 들어간 신제품들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경쟁하듯 배치하고 있었다.
LG전자는 올해 CES에서 첫선을 보인 AI 기반 가사도우미 로봇 '큐9'(Q9·가칭)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시연했다. 이에 질세라 GE는 AI와 결합돼 더 똑똑해진 스마트홈 애플리케이션(앱)을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앱은 집 안의 가전들과 연결된 앱이 기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음료·아침식사·소스 등 원하는 조리 형태와 갖고 있는 재료를 알려주면 AI가 맞춤형 레시피를 제공해 준다. LG전자와 GE는 이번 행사를 앞두고 AI 기능 고도화를 위해 각각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AI 결합 가전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 밖에 삼성전자는 AI가 알아서 바닥 환경에 맞춰 청소 모드를 설정하는 청소기를 선보였다. 밀레·중국 미디어(Midea·메이디)·스메그 등 주요 가전사들도 "이번 전시에는 AI 탑재 신제품을 들고 오지 않았으나, 출시를 준비 중"이라고 공통적으로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주방·욕실 가전은 성능과 디자인이 상향 평준화돼 있다"며 "AI를 누가 먼저, 잘 접목해서 이용을 더 편리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앞으로 시장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