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 레전드 데이비드 베컴에게도 '국민 욕받이' 시절이 있었다. 베컴의 첫 월드컵 무대였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다. 하필 축구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앙숙관계였던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에서 베컴은 초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디에고 시메오네의 거친 플레이에 흥분한 베컴이 보복성 발차기를 했고, 심판은 곧바로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베컴이 퇴장당하면서 잉글랜드는 70여 분을 10명으로 버텼지만 승부차기 끝에 8강행이 좌절됐다.
사실 베컴도 억울했을 것이다. 찼다기보다는 넘어진 상태에서 다리를 벌리며 가볍게 부딪친 수준이었다. 하지만 모든 화살은 베컴에게 돌아갔다. 글렌 호들 대표팀 감독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까지도 그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베컴은 지옥 같은 시기를 보내야 했다. 어딜 가든 손가락질과 욕설을 들어야 했고, 교수형당하는 베컴 인형이 거리 곳곳에 걸리는가 하면,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가족들의 안전까지 위협받자 베컴은 심각한 불안 증세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베컴'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고작 22세에 불과한 베컴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마녀사냥이었다. 그의 방패를 자처하고 나선 이가 있었다.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다. 그는 홈구장에 베컴을 위한 '섬'을 만들었다. 그 섬은 상처 입은 베컴과 그를 배신하지 않은 팀 동료들만이 있었다.
동료들 모두가 베컴을 지키기 위해 발휘됐던 투쟁심은 오히려 맨유를 원팀으로 묶어줬다. 그 결과 맨유는 1998~99시즌 리그와 FA컵, 유러피언리그(현 챔피언스리그)까지 우승컵을 거머쥐며 '트레블'의 위업을 달성했다.
베컴은 '국민 욕받이' 시절을 계기로 국가대표의 책임감을 배웠고, 팀 동료들의 중요성을 깨우쳤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 축구에서는 '국민 남동생'이었던 이강인이 하루아침에 '국민 욕받이'로 전락했다. 아시안컵 4강전을 앞두고 대표팀 주장 손흥민과 싸웠고, 손흥민은 부상을 입었다.
이강인은 손흥민을 만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고개를 숙였다. 손흥민도 SNS에 이강인과 어깨동무한 사진을 올리며 화답했다.
하지만 이강인을 향한 마녀사냥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손흥민이 "나도 어릴 때 실수를 많이 했다. 강인이를 용서해달라"고 당부했음에도 SNS 테러와 조롱·위협 게시물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베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강인의 나이 역시 베컴의 '국민 욕받이' 시절과 같은 22세다. 더 성장해야 할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산이다. 손흥민처럼 세계를 대표하는 선수로, 대표팀을 이끌 선수로 잘 가꾸고 키워야 한다.
이쯤에서 두 선수의 어깨동무에 박수를 보내고 건투를 빌어주는 것도 진정한 축구 팬의 자세일 것이다. 마녀사냥 대신 합리적인 비판과 조언을 해줄 때다. 물론 이강인이 진정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이강인도 '국민 욕받이' 경험을 계기로 베컴처럼 국가대표의 책임감을 배웠을 것이고, 팀 동료들의 중요성을 깨우쳤을 것이라고 믿어주자.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은 미우나 고우나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