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임무가 '합법적'으로 간호사들에게 떨어졌다. 불법의 경계에 있는 진료지원(PA) 간호사는 물론 진료 공백을 겪는 의료기관의 모든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원칙적으로 넓어졌지만, 간호사가 실제 할 수 있는 업무는 주로 의사 출신인 병원장의 재량에 달려 있어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계획안'을 의료기관에 배포했다고 27일 밝혔다. 시행은 이날부터다. 시범사업안에 'PA 간호사'가 아닌 '간호사'를 명시한 것은 적용 대상 의료기관의 모든 간호사가 의사 업무 일부를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별도 신청 없이 의료법상 종합병원이나 전공의법이 정한 수련병원이면 바로 시범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복지부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의료기관장이 내부 위원회를 구성하고 간호부서장과 협의해 설정하도록 했지만 대법원 판례로 금지된 의료 행위는 제외된다. △자궁질도말세포병리검사를 위한 검체 채취 △프로포폴에 의한 수면 마취 △사망 진단 △독자적으로 마취약제와 사용량을 결정하는 척수마취 시술 등이다. 시범사업은 보건의료 재난경보 '심각' 단계 발령 때 한시적으로 이뤄진다. 복지부는 종료 시점을 별도 공지할 예정이다.
복지부가 법적 기반 위에서 시범사업을 하는 것은 의사 업무로 인해 발생할 민·형사적, 행정적 책임으로부터 간호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지난 20일 시작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이후 의료 현장에서는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를 강제로 떠맡고 있다는 불만과 지적이 이어졌다. 2020년 전공의 파업 때는 의사 업무를 대신한 일부 간호사가 무면허 의료 행위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절차에 따라 일을 하면 고소·고발이 되더라도 법적 근거가 분명해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계가 모호했던 업무 범위 확대는 간호사들이 원했던 바이지만 시범사업안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기관장이 거의 다 의사 출신인 점, 간호부서가 아닌 내부위원회가 결정권을 쥔 점, 간호사 숙련도와 자격 등을 따져야 하는 점 등이 걸림돌로 꼽힌다. 간호사에게 합법적으로 추가 업무를 부여하면서도 추가 보상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는 불만도 감지된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방향 자체는 긍정적이어도 내용적으로는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곧 총회에서 이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