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조합 담합 허하라? 총선 앞두고 시장경제 허무는 국회

입력
2024.02.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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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물량 담합 허용한 중기협동조합법 
공정위 "말도 안 되는 법" 반대했지만
"중기중앙회가 원해" 법사위 상정 앞둬

국회가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경성(가격, 생산량 등) 담합’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수순을 밟고 있다. 주무 부처 공정거래위원회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말도 안 되는 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의원들이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격 담합 허하겠다고? 그 법이 뭐길래

27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이하 조합법) 개정안 검토의견 자료를 제출했다. 2019년 개정된 조합법은 소비자 피해로 직결되는 가격 인상이나 생산량 조절 등의 ‘경성 담합’은 금지하되, 조합(사업조합, 연합회 포함)의 공동구매, 공동판매, 연구개발 등의 '연성 담합'은 허용하고 있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쉬운 중소기업의 구조적 어려움을 덜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3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위원장 대안으로 통과한 조합법 개정안은 조합이 경성 담합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 △참여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100분의 50 이상이고 △공동행위가 최종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만 공정거래법 적용을 가능하도록 했다. 즉 기업 간 거래(B2B)에서 점유율이 100%라도 최종 소비자거래(B2C)에서 점유율이 50% 미만이면 담합을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공정위 "말도 안 되는 법"

본보가 입수한 공정위의 검토의견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는 3가지 문제를 지적하며 반대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①경쟁법에서 경성 담합에 예외를 두는 경우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경성 담합은 전 세계적으로 최우선 법집행 대상이고 유럽연합(EU) 등에선 시장점유율이 낮더라도 경쟁법 적용에 예외를 두지 않고 있다.

②대부분의 B2B가 중소기업 간에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가 구매 등 조합의 담합 피해자는 결국 중소·중견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언급했다. 중소 제조업의 B2B 비중은 86.8%(2023년 실태조사)에 달한다.

③B2B 담합은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최종소비자의 부담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예컨대 법이 통과되면 아파트 공사에 레미콘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판매조합을 만들어 가격을 두 배 인상해도 막을 수 없어 아파트 가격이 더 비싸지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총선 코앞 입 닫은 의원들

문제는 총선 바람에 법안이 그대로 통과될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 법안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발의했는데, 지난해 11월 28일 산자중기위 법안소위와 30일 전체회의를 거친 뒤 상임위를 통과했다.

법안 논의는 법안소위에서 한 차례 이뤄진 게 전부였다. 이 의원은 이 자리에서 “어쨌든 중기중앙회협동조합에 있는 분들은 이 법안이 만들어지기를 굉장히 원하면서 우리 홍익표 대표님도 만나 뵙고 또 이쪽에 윤재옥 대표님도 만나면서 이 법안이 꼭 통과되길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 관계자는 “총선이 코앞인데 표가 많은 중기중앙회에 누가 대놓고 반대 의견을 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법안은 국회 논의 마지막 단계인 법사위 상정을 앞두고 있다.

세종=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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