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어기고 미국으로 넘어오는 이들에게 누가 더 모진지를 가리는 전·현직 대통령 간 ‘국경 매치’가 성사됐다. 11월 대선에서 민주·공화 양당 후보로 대결할 것이 유력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날 미국 남부 텍사스주(州) 국경을 방문한다. 이번 대선 핵심 이슈로 부상한 불법 이민 문제에서 공세를 이어가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여론을 못 이기고 국경 정책을 강화 중인 바이든 대통령의 승부에 불이 붙었다.
백악관은 26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29일 텍사스 브라운즈빌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멕시코 국경 지역에 위치한 브라운즈빌은 대규모 불법 월경이 시도되는 곳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곳에서 국경순찰대원 등을 만나 국경 안보 강화 입법 필요성을 강조하고 공화당 의원들에게 인력 증원과 펜타닐(마약) 탐지 기계 확보를 위한 자금 마련에 협조할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날 백악관 발표는 지난 23일 미국 CNN방송에 의해 트럼프 전 대통령 동선이 노출된 지 사흘 만에 이뤄졌다. 캐럴라인 레빗 트럼프 선거 캠프 대변인은 26일 성명에서 “바이든 참모들이 이미 보도된 트럼프 대통령 방문일에 일정을 맞췄다”고 꼬집었다.
임기 내내 국경 문제 쟁점화를 꺼려 온 바이든 대통령이 공세로 태도를 전환한 것은 이달 들어서다. 국경 강화 방안과 예산이 담긴 패키지 법안의 처리가 공화당 강경파 반대로 무산된 게 계기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일 연설에서 “수년간 국경 안보를 주장해 온 공화당이 막상 가장 강력한 국경 안보 법안이 만들어지자 입장을 바꿨다”며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정치적 문제로 만들기를 바라는 트럼프가 뒤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태세 변경은 여론을 의식한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26일 공개된 미국 몬머스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의 이민 문제 처리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미국인이 71%나 됐다. 불법 이민이 심각한 문제라는 응답 비율도 61%에 달했다. '불법 월경자 수가 설정한 한도를 넘으면 국경을 닫거나 망명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이 검토되고 있다'는 정보를 백악관이 흘리는 것 역시 비난 여론 무마용이라는 게 미국 언론들 지적이다.
그러나 원조 '반이민 포퓰리스트(대중에 영합하는 정치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세는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브라운즈빌에서 약 520㎞ 떨어진 텍사스 남부 국경도시 이글패스를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날 찾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남긴 글에서 “부패한 조 바이든의 국경 침공이 우리나라를 파괴하고 국민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가 용의자로 지목된 최근 여학생(22·조지아대에서 시신 발견) 피살 사건을 거론하며 이민자 혐오 여론도 부추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