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스이용자위원회는 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 18층 대회의실에서 경제분야 보도를 평가했다. 좋은 경제 기획들은 칭찬할 만했지만 보도 대상과 관점에 편중이 보여 문제라는 평이었다. 복잡한 이슈가 되고 있는 경제 뉴스를 다각적이고 전문적으로 다룰 필요성이 지적됐다. 회의에는 최영재 위원장을 비롯해 외부 위원 8명과 사내 위원인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이 참석했고, 한준규 뉴스룸국 뉴스2부문장, 이진희 논설위원이 함께 했다.
가장 먼저 지적된 것은 경제 뉴스의 편중과 누락 문제였다. 조영준 위원은 "한국일보 경제 지면이 적기도 하지만 다른 언론에 비해 빠진 뉴스가 많다"며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삼성물산 배당 압박, 미국의 폭스바겐 차량 압류, ASML의 넷제로(탄소중립) 선언 등을 빠진 기사 사례로 꼽았다. 그는 "폭스바겐 압류는 미국이 '위구르 강제노동금지법'에 따라 중국 신장 등에서 생산된 제품 수입을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며, 폭스바겐은 신장 공장 철수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일보도 앞으로 공급망 이슈를 주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 위원은 또 "2월 22일자 경제면 중 1개면을 거의 삼성 관련 기사가 차지했다"면서 특정 기업 편중 문제도 짚었다. 이 날 다른 언론들은 마크 저커버그 방한, 그린벨트 규제 완화, 기후위기 대응 기술 등을 다양하게 보도했다는 것. 박경미 위원도 "반도체 등 기간산업이나 대기업을 다룬 기사에 비해 다른 제조업, 중소기업 관련 뉴스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장기 침체 속 그들의 고군분투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테크, 젊은 세대의 관심사에 소홀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젊은층의 관심사가 재테크와 자산형성인 만큼, '내돈내산' 코너처럼 재테크·절세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기사를 늘리고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등 젊은 층이 선호하는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자는 제안(박찬희·장민제 위원)이 나왔다. 최원석 위원은 "뉴욕타임즈는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경제적 불안감에 주목해 이들을 심층 인터뷰해 소득·생활·미래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베이비부머 세대와 거주공간을 비교하는 등 거시 지표만 보여주는 경제 기사가 아니라 사람 기사로 만들어냈다"며 젊은층의 관심사에 주목하기를 권했다.
누락된 뉴스가 많다는 것은, 경제 이슈가 복잡 이슈임을 파악하고 깊이있는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조 위원은 "최근 경제 뉴스는 단순한 경제 뉴스가 아니다. ESG, 국제관계 등과 연관된 복잡한 이슈가 되고 있다. 기자들이 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 역시 "경제 뉴스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다차원 함수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다각적으로 취재하고, 깊이있게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면에서 'AI 시대, 노동의 지각변동'(2월 19~22일 자) 기획은 취지에 비해 깊이가 아쉬웠다는 평가다. 장민제 위원은 "시리즈 1회가 데이터라벨링, AI 엔지니어의 다양성, 한국 AI의 나아갈 길로 구성됐는데 기사들끼리 연계성이 보이지 않는다. 또 완전히 다른 산업환경인 미국과 한국을 놓고 AI 엔지니어 채용공고 숫자를 단순 비교해 한국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논리적 비약으로 생각된다. AI 인재 육성과 관련해 한 기사는 다양한 특이직군의 필요성, 다른 기사는 기초과학자 육성을 강조하는데 이런 논지 차이도 유기성을 흐린다"고 말했다. 박찬희 위원은 "'생성과 분화' '대체와 대응' 등의 연재 회차별 제목이 딱딱하고 모호했다"면서 "독자 입장에선 AI 시대에 뜨는 직무가 무엇이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최 위원장은 배경 설명과 분석이 필요한 기사 사례로 ‘플랫폼법 사전 지정제 '원점 재검토'... 업계 반발에 몸 사린 공정위’(2월 8일 자) 기사를 꼽았다. 그는 "기사는 법안 원점 재검토의 원인을 '통상교섭본부장의 반대'라고 표피적으로 보도했는데 공정거래위가 추진하는 법안에 통상 담당 차관급 인사가 공개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 예사로운 일이냐. 물밑에 있는 플랫폼 업체들의 엄청난 로비를 취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미 위원은 '작년 못 쓴 예산 46조 ‘역대 최대’'기사(2월 9일 자)를 놓고 국가 예·결산 정치를 관심 갖고 들여다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예산의 불용액 추이와 원인을 잘 정리한 기사다. 그런데 예산 불용으로 정부 사업이 불완전하게 종료된 것이라면, 예산안 대비 불용액 규모가 얼마고 사업분야는 무엇인지 등을 취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어려운 경제 용어가 설명 없이 보도된 기사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경미 위원은 "과학기술, 경제 분야의 전문 용어를 독자들이 따라잡기 쉽지 않다"며 "모태펀드, 프로젝트파이낸싱, 저PBR 같은 용어가 기사에 쓰였는데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사의 관점에서도 치우침이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룰 수 없는 숙제, 상속세 개편'(1월 29~31일 자) 기획에 대해 박수진 위원은 "한겨레신문을 보면 상속세 납부자 상위 10%(전체 피상속인의 0.26%)가 상속세의 75%를 내고 있는데, 상속세가 더 이상 부자만 내는 세금이 아니라는 현실 진단이 적절하냐"고 물었다. 그는 "왜 미룰 수 없는 숙제인지가 기사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공평과세 측면에서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해 세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것인지, 입장이 기획단계에서 명확히 서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진단과 대안 제시가 예리하지 않다. 부의 축적에 상속의 비중이 커지는 현실에서 감세에 방점 찍힌 세제 개편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역기능에 대한 고민과 입장 정리부터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기획 상·중편에선 가업 승계 문제를 다루다가 하편에서 전반적인 상속증여세 완화로 주제가 확산했다"(장민제 위원) "기업인 문제로 시작했는데 인용한 설문조사는 일반 납세자 조사였다"(최 위원)는 의견도 있었다. 최 위원장은 "복잡다양한 이해관계자 입장을 깊이 다루지 않고 단순화하면 정부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기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의 합계출산율 보도 기사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제기됐다. 1면 ''4분기 0.65명 쇼크'... 18년간 380조 썼는데 출산율 바닥 뚫려'(2월 29일 자)를 포함해 이 날 기사 5건이 나왔지만 통계 나열, 외국과의 비교에 그쳤고 원인 분석에 장시간 노동, 성차별적 양육 환경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박수진 위원은 "'부처별 보여 주기식 현금성 지원 등에 급급하다 보니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원인 분석은 핵심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다. 외신들도 공히 지적한 노동시간 단축, 성평등이 기사에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충분한 분석이라고 보기 어렵다.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는 현 정책 방향, 임신·출산이 여성 노동자에게 경력 단절 등의 손실로 이어지는 차별적 상황 등에 대한 관점이 기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찬희 위원은 "저출산 예산을 18년간 380조 원을 썼다고 기사에 나오는데, 380조 원이 언급된 감사원 감사보고서는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예산이라고 돼 있다. 숫자를 정확히 확인하고 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현장의 목소리, 취약계층의 문제를 담은 경제 기사들에는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 1월 '새마을금고의 배신' 기획과 그 후속 보도인 ‘“사채 고통 없애주려 만들었는데…프랑켄슈타인 됐다" 새마을금고법 '산파'의 후회‘(2월 5일 자)에 대해 "문제 발생의 근본적 구조를 전달하고, 새마을 금고 기능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적 평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좋은 기사"(최 위원장)와 같은 호평이 잇따랐다. 악질 불법 추심행태를 조명한 '정부 단속 비웃는 불법 사금융'(2월 13일 자)도 "금감원이 중점 추진한다는 ‘불법 사금융 계약 무효 소송 지원’과 관련해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깊이 있게 다뤘다"(조 위원) "불법 추심 피해자 10명을 만나 불법 사금융을 접한 경로, 업체 수법, 피해 상황, 이용 이유, 피해구제 대책 및 한계를 두루 취재하는 등 많은 품을 들인 보도"(박찬희 위원)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수진 위원은 "언론이 이슈에 가장 첨예하게 연관된 이해관계자에게 마이크를 주고 발생적 구조를 짚어줄 때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연진의 IT 프리즘: 중국 인터넷 쇼핑몰의 보이지 않는 힘'(2월 24일 자) 칼럼은 중국 업체의 강점과 현실적 대안을 잘 짚어냈고, ’공사비 떼이고 10억 피소... 구제받을 길 없는 건설 하청‘ ’1년6개월째 추가공사비 모르쇠.. 하청의 눈물‘(2월 15일 자)은 하나의 피해 사례에서 하청 문제의 전체 구조까지 확대된 좋은 보도라는 평을 받았다.
경제 분야 외에 범죄 피해자와 가족이 처한 현실에 주목한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2월 5~9일 자)가 좋은 기획으로 주목받았다. 박경미 위원은 "가해자 관련 정책에 비해 범죄 피해자 지원에는 인색한 정부 정책의 불균형 문제를 잘 짚었고, 범죄의 종결은 피해자 회복이라는 기획 방향도 적절했다. 끊어진 동아줄을 형상화한 그래프 등 다양한 그래픽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장애를 지워버린 뷰파인더 ‘가난한 다양성’ 들킨 K팝‘(1월 31일 자)도 언급됐다. 아이유의 신곡 'Love Wins All'의 제목 변경 논란을 K팝의 문화다양성 문제로 본 기사다. 최 위원은 “미디어가 소수자, 약자 집단을 재현하는 방식이 불편함과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기사의 관점은 시청각 콘텐츠를 대량소비하며 고정관점과 편견에 빠지기 쉬운 시대에 언론이 제기할 만한 중요한 질문”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의대정원 증원과 의료계 파업 보도에 대해선 우려가 나왔다. 최 위원장은 2월 19일자 1면 기사 '정부 꺾겠다고 다 내팽개친 의사들... 더 싸늘해진 여론'과 사설 '말기암 수술도 연기...이러면서 국민과 환자 위하는 척하나'를 예로 들으며 "의사에 대한 비방과 공격의 톤이 강해 편파적 보도로 보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창간 70주년 기획연재 '한국일보 70년·70대 특종'의 첫 편 '하와이 망명 이승만 전 대통령 단독 인터뷰(1961)'(2월 26일 자)에 대해 박찬희 위원은 "이승만 전 대통령 단독 인터뷰가 왜 연재의 첫 회인지 의문이다. 편집자주에서 밝힌 것처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특종이었다면 더 좋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