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카톡방 60명이 주식사기꾼"... 석 달 뒤 2.6억 털렸다

입력
2024.03.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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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의 유혹, 리딩방]
수개월 공짜 투자 코치로 신뢰 쌓고
가짜 앱 설치 유도 후 투자금 먹튀
"사기꾼 이름, 전화번호도 몰라"


"평생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살아왔는데…창피해서 어디에 말도 못 하고 있습니다."
리딩방 사기 피해자 이경수씨.

충남 당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경수(가명·60)씨는 지난해 10월 유튜브에서 우연히 '배터리아저씨'로 알려진 박순혁 작가의 투자 강의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5년 차 주식투자자인 이씨는 안 그래도 지난해 내내 이차전지업체의 주가가 몇 배씩 오르는 것을 보면서 '나도 한번쯤 투자해 볼까'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씨가 산 반도체, 디스플레이업체 주가는 계속 떨어져 상당한 손해를 보고 있었다.

박 작가의 영상 아래 소개된 링크를 눌렀더니 박 작가와 카카오톡으로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씨는 "그가 최근 공매도 반대 운동 때문에 바쁘다면서 한 전문가를 소개했다"며 "그게 불행의 시작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배터리 아저씨', 증권사 본부장 사칭 후 초대

박 작가가 소개한 모 증권사 최모 본부장에게 카카오톡 대화를 신청했더니 최 본부장은 60명가량 참여한 오픈카톡방 링크를 전달했다. 이 방에서 최 본부장을 중심으로 매일 오전 8시 미국 장 마감 분석을 시작으로 오늘의 코스피·코스닥 유망 종목 분석까지 진행됐다. 이씨는 "돈도 받지 않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매일 오전에 찍은 종목이 귀신같이 올라 놀랐다"며 "장 마감 후 '본부장님 덕분에 호캉스 갑니다' 등 수익 인증글이 쏟아지면서 마음이 뛰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최 본부장은 오픈채팅방 회원들에게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관련 뉴스를 공유하면서 '곧 코인시장이 들썩이니 코인판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동성이 심하니 자금의 10%만 해야 한다', '절대 대출을 받아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이씨가 3개월간 최 본부장의 리딩방을 통해 얻은 수익률은 100%. 하지만 처음에 최 본부장을 믿지 못해 적은 금액만 투자한 걸 후회하던 참이었다. 이씨는 "그렇게 말하니 더 신뢰가 생겼다"며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투자금을 끌어모았다"고 말했다.

'대출받아 투자 금물'에 믿음 커져

최 본부장은 수수료가 적은 가상화폐거래소라며 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앱을 소개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털 사이트에서 해당 앱을 검색했더니 실제 수년간 정상 운영하고 있는 거래소라는 글을 볼 수 있었다. 최 본부장은 환전과 투자를 대행하는 대신 10%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했다. 3개월간 공짜로 리딩방에 참여하면서 이들의 실력을 지켜본 만큼 수수료가 크게 아깝지 않았다.

이씨는 리딩방 참여 3개월 만인 1월 9일 1,000만 원을 입금했다. 이들은 해당 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 등 주요 코인을 매집했다.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서 주가가 치솟았다. 이에 아파트 세입자에게 내줄 전세금과 주유소 사업자금까지 끌어모았다. 1월 29일까지 총 2억6,000만 원이 가상화폐거래소 계좌로 들어갔다.

한 달 사이 수익이 원금의 10배 이상으로 불었다. 세입자에게 내줄 전세금부터 회수하려고 출금을 요청했다. 그러자 최 본부장 측 담당 직원의 태도가 돌변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조금만 더 갖고 있으면 수십 배를 더 벌 수 있는데 왜 빼냐며 화를 냈다"면서 "뭔가 이상해서 계속 출금을 요청하니 '계좌가 이상하다' '세금을 내야 출금이 가능하다' 등 핑계만 대다가 결국 카톡방에서 강퇴했다"고 말했다.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환불을 받으려 해도 최 본부장을 포함해 리딩방 운영 직원 어느 누구의 휴대폰 번호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대화를 나눈 박순혁 작가 역시 사진을 도용한 사칭범이었다. 이씨는 "이제 다시는 주식 투자에는 발도 안 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의심 못하게 사전에 가짜 글 SNS에 작성

한국일보가 만난 리딩방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뭔가에 씐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수십 명의 사기꾼이 수개월간 가면을 쓰고 피해자의 환심을 산 뒤 사기를 치다 보니 주식 경력자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실제 기자가 지난달 26일부터 사흘간 잠입한 불법 리딩방에서는 운영자 지시에 거래하는 것처럼 일사불란한 이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장 마감 후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수익 인증 글을 올려댔다.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이 수익을 냈다는 글을 계속 보자 '나도 동참해 볼까'란 유혹이 생길 정도였다.

사기꾼 일당은 ①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명인을 사칭한 투자 권유 글로 이미 주식시장에서 상당한 손해를 본 투자자를 겨냥한다. ②투자자인 척하는 바람잡이들이 있는 오픈채팅방으로 초대한 뒤 ③리딩 덕분에 거액의 수익을 벌었다는 인증 글로 피해자를 현혹한다. ④실제 초기에는 장 마감 후 상한가 종목이나 급등주 등을 추천하면서 수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⑤한 달 이상 신뢰를 쌓은 뒤 당시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공모주, 가상화폐 등 투자를 권유하며 가짜 거래소 앱을 깔도록 유도한다(본격적인 사기 행각). ⑥앱에서 막대한 수익이 발생하는 것을 본 피해자는 대출까지 받아 가면서 투자하지만 이는 모두 가짜다. ⑦출금을 요청하면 각종 핑계를 대며 거절하다가 결국 채팅방에서 피해자를 내쫓아 버린다.

리딩방 일당에게 6억 원을 입금한 박모씨는 "내가 들어간 카톡방에 있는 박모씨와 다른 피해자 카톡방에 있는 정모씨 프로필 사진이 같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이들이 모두 사기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큰돈을 벌었다며 올린 호캉스 사진까지 모두 똑같아 허탈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기에 쓰는 가짜 거래소가 마치 수년간 정상 운영된 거래소인 것처럼 각종 SNS에 글을 남겨 의심을 피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백기남 금융사기피해지원협의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비슷한 수법에 당한 투자자만 300명이 넘고 피해 규모는 400억 원을 넘어섰다"며 "사기꾼 일당은 주가가 실시간 연동되는 가짜 주식 앱을 만든 개발자부터 주식 강의를 하는 투자 전문가까지 포함된 거대 조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함께 '자본시장 불법행위 대응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 대응에 나선 금융감독원은 현재 미등록 투자자문, 사기 등으로 불법이 의심되는 61건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3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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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방이란?
주식 종목을 추천하거나, 매수·매도 시점을 알려주는 행위가 이뤄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뜻한다. 종목 흐름을 읽어준다는 리딩(Reading)과 이끌어준다는 리딩(leading) 두 가지 뜻을 모두 가졌다. 유료, 무료서비스가 있지만 모두 사기에 동원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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