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접하는 다양한 기후행동 캠페인, 챌린지 이름을 보면 혼란스럽다. 한쪽에서는 '기후행동, 탄소중립 완전 쉬워요'라고, 다른 곳에서는 기후 '어벤져스'나 '의병'이 되자고 한다. 전자는 지레 겁먹거나 포기하지 말고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하자는 것일 테고, 후자는 당신의 기후행동이 그만큼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뜻일 거다.
그러나 둘 다 큰 함정이 있다. 우선 상대를 쉽게 보면 큰코다친다. 대표적인 게 텀블러다.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쓰자는 실천수칙은 10년이 넘도록 '기후행동 톱3'에 들어간다. 표면적인 이유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우리가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은, 그 쉬운 게 아직도 안 되는 현실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후자다. 과장된 표현이 가득한 계획과 선언만 보이기 때문이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능력에 넘치는 계획표와 손대지 않은 참고서가 가지런한 책장을 바라보며 '시작이 절반'이라는 격언만을 새기는 수험생과 비슷하다.
양극단을 오가는 슬로건들 앞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에겐 그저 각자 배출한 만큼, 책임져야 할 만큼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1인분의 기후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만 여기에는 구체성과 세심함이 필요하다.
첫째, 사람마다 책임져야 할 기후행동 1인분의 양이 다르다. 소득수준 상위 10%가 전 세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50%를 차지하고, 하위 50%의 사람들은 전체의 10%만 배출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한민국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위 1% 부자 한 사람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민 평균의 11배가 넘는다. 소득 중위권 이하 한 사람당 온실가스 배출량의 자그마치 30배다.
이렇게 기후변화 책임이 천지 차이인데 비슷한 수준의 기후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먹방 유튜버와 소식좌(적게 먹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에게 같은 계산서를 내미는 것과 같다. 누가 어떤 이유로 얼마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소득뿐 아니라 연령, 생활습관 등 여러 유형별 탄소발자국 산정에 기반한 1인분의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
둘째, 전략의 개별성이다. '한 사이즈가 모두에게 맞지 않는다(One size doesn’t fit all)'는 말이 있다.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면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과 같은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국내 기후행동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처한 환경, 상황에 상관없이 모두 '사명감'만으로 실천할 거란 순진한 기대를 하고 있다. 개인의 기후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가치관, 지식 수준부터 성격, 정치 성향까지 십여 가지가 넘는다. 고급 수제양복처럼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은 아니더라도 천편일률적인 기후행동 십계명만 계속 주어진다면 이 역시 기후행동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시민들이 각자 해내야 하는 '1인분의 기후행동'을 유도하려면 먼저 다양한 '기후행동 레시피'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