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기업이 기업가치를 높일 계획과 이행 사항을 매년 자율 공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세제 지원 등 인센티브, 기업가치가 우수한 기업을 모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이를 추종한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등 참여 유도형 대책도 마련한다. 한국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인데, 강제성이 없는 데다 유인책이 구체적이지 않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KRX마켓스퀘어에서 한국거래소 등 유관 기관과 함께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주요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에 따르면 전체 상장기업은 기업가치 현황을 평가·분석해 가치 제고를 위한 목표 설정과 계획수립, 이행 평가·소통 내용 등을 연 1회 기업 홈페이지와 거래소를 통해 자율 공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거래소는 6월까지 공시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로 했다.
기업가치 제고 방안은 기본적으로 기업 '자율 사항'이다. 이에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와 기업이익의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안에 다양한 세제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우수 밸류업 기업 표창, 투자활동(IR) 지원 등을 통해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이번 방안은 기본적으로 일본 도쿄거래소가 지난해 3월 내놓은 시장체제 개편안을 참조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기업의 가치 제고는 기업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야지, 압박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일본보다 더 세세한 가이드라인과 강력한 인센티브를 기반으로 자율 참여를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리아밸류업지수'는 9월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주주환원을 통한 기업가치 성장이 예상되는 상장기업으로 구성된 지수를 신규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지수가 개발되면 연말까지 이를 추종하는 ETF도 출시한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도 이 지수를 활용하도록 유도, 기업가치 우수기업에 투자가 확대될 전망이다. 6월부터 거래소 홈페이지에 코스피·코스닥 상장기업 전체의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수익비율(PER)·자기자본이익률(ROE), 연간 배당성향·배당수익률 등 투자지표도 비교해 공표할 예정인 만큼, 투자자도 기업가치 우수기업·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방안은 국내 증시에서 상장기업이 미래 성장 가능성은 차치하고 현재 보유자산만큼도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발했다. 실제 지난해 말 한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558조 원으로 주요국 13위 수준으로 성장했으나, PBR은 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PBR은 주식의 장부상 가치(순자산)와 비교한 시장가치(주가·시가총액)를 뜻하는 데, 한국 상장사 평균은 1.04에 그친다. 이 수치가 1보다 낮으면 회사의 시장가치가 장부상 가치도 안 될 정도로 저평가됐다고 본다. 지난해 말 기준 PBR이 1 미만인 기업 수는 코스피 기업의 65.8%인 526개, 코스닥 기업의 33.8%인 538개에 달한다.
결국 저PBR 기업이 제 평가를 받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이번 밸류업 방안의 핵심이다. 다만 실행 과정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시장에서 기대했던 '파격적 혜택'은 다음 기회로 밀렸다.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 기업에 대해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가업승계 컨설팅 등을 제시하면서도 법인세 인하 등 기업에 직접적인 세제 지원책은 포함하지 않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안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만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페널티도 없고 인센티브도 매력적이지 않아 기업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결국 세제 지원으로 기업들의 가치 제고를 노린다는 것인데 이는 과거 정부에서도 번번이 실패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사주를 취득한 다음 소각을 의무화하거나 기업의 물적분할 시 중복 상장을 못 하게 하는 식의 구체성이 없다"며 "대주주보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높이는 방안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1차 발표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위원장은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과 배당 세제 등 다양한 내용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5월 예정된 2차 밸류업 세미나에서 더 실질적인 방안이 나올지 주목된다.